민중경선 거부, 실질적인 공투본을 만들자!
최광은(사회당 정치연수원 사무국장)
정치적 계산으로 구성되는 공동투쟁본부
노동자의 힘이 제안한 공동투쟁본부의 논의에 현재까지 참가하는 단위는 노동자의 힘,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전국연합이다. 벌써 세 차례의 예비모임이 열린 것으로 안다.
물론 이들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힘 내부의 분란 가능성, 경선의 현실성, 민주노동당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문제, 전국연합 중심의 6·15 선본과의 충돌 가능성 등등.
그런데 공동투쟁본부의 주요 투쟁 방향이 반제, 반신자유주의라고 한다면, 기존의 민중연대가 갖는 목표와 별반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주된 구성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힘은 기존의 민중연대가 이러한 투쟁을 잘 수행할 수 없음이 드러났기 때문에 공동투쟁본부를 새로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상층의 협의로 시작하는 이 공동투쟁본부가 민중연대보다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다.
노동자의 힘과는 계선으로 연결되는 문제이지만,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자.
사회진보연대를 이끌고 있는 선배들과 한 배를 타고 있는 전국학생연대회의는 올해 초 이미 그들의 기관지 《대장정》을 통해 민중연대를 통한 대선 대응을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항상 민중연대의 강화와 좌익화를 내세워 왔다. 일단 이러한 주장은 노동자의 힘이 지금 주장하는 바의 민중연대에 대한 평가와는 모순된다. 조직이 다르니 당연히 입장의 차이도 분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진보연대의 핵심들은 또한 노동자의 힘 회원이기도 하다. 또한 여기서 밝히기는 껄끄럽지만, 이들은 노동자의 힘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사람과의 교감에 따라 이번 민중 경선 판을 조직하는 문제에 있어서 먼저 치고 나가는 배우의 역할을 맡았다.
한편, 사회진보연대는 올해 여름의 활동가 수련회에서 대선투쟁본부 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 안은 지금의 공동투쟁본부가 대선 기구를 별도의 형식으로 둔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틀리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일하고 따라서 두 조직은 함께 가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투쟁에 별 의지가 없다고 비판받던 조직들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노동자의 힘 제안을 수락한 것을 개과천선이라고 칭찬해 주어야 하나. 결국 이들 조직들이 공동투쟁본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당면한 대선 대응을 둘러싼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치적 계산의 최대의 수혜자는 민주노동당이다.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노동자의 힘을 비롯한 민중 경선 파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주체 형성 정도의 진전(나는 이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계급적 주체 형성을 지연 혹은 굴절시킨다고 생각한다. 경선에 승복한다는 전제는 경선 과정에서 아무리 사상 투쟁과 정치적 교류를 해보았자 그들과 결국은 공동의 운명을 지겠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들은 나중에 한 배를 타고도 공동의 운명체였음을 거부하며 자기 존립 근거를 찾겠지만 말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과 약간의 떡고물이다(공동투쟁본부 논의의 본격화와 함께 노동자의 힘은 이미 민주노총 중앙의 간부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공동투쟁본부가 그 본래의 의의를 살리고, 노동해방의 대의를 살리려면, 그리고 이를 주창한 사람들의 운동 궤적에 불연속 구간을 그리지 않으려면 진정 투쟁하고자 하는 조직과 개인들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로 결집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는 적어도 현재와 같이 상층의 협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범추가 환생한 공동투쟁본부
노동자의 힘은 기존의 범추와 공동투쟁본부는 다르다고 힘주어 말한다. 노동자의 힘은 그 차이의 핵심을 범추는 선거에만 중심을 둔 것이고, 공동투쟁본부는 대중 투쟁의 우위 속에 선거를 결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공동투쟁본부의 탄생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미 대중투쟁 우위의 성격보다는 대선이 우위에 놓여 있는 정치적 성격 탓에 가능하다. 따라서 이는 노동자의 힘이 말해온 대중 투쟁 우위의 노선이 관철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구조이다. 노동자의 힘이 지닌 의도의 순수성을 100% 인정한다고 해도 이는 바뀔 수 없다. 동상이몽은 현실이자 진실이다. 이 장면에서 노동자의 힘 동지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너무 순진하거나 너무 정치적이거나! 자꾸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줄타기가 생각난다. 제발 기우이기를 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힘이 제안한 공동투쟁본부는 기존의 무산된 범추를 얼굴만 달리해 기사회생시키고 있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당연히 환영할만한 제안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후보 선출을 마치고 대선 마차를 굴리고 있다. 그쪽에서 보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별로 손해볼 것이 없다. 마차를 좀 더 모양새 있게 꾸미느냐, 아니면 그냥 이대로 굴리느냐의 차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온 것이다.
"노동자의 힘의 제안은 지금 사실상 무력화된 범진보진영의 대중적 예비경선과 범진보진영의 공동투쟁을 되살릴 계기가 될 수 있다."(정윤광, 「노동자 민중진영의 힘을 결집한 대중 투쟁과 대선투쟁 체제를 구축하자 - '노동자의 힘' 제안을 적극 환영하며」)
97년 정치연대보다 못한 전술
노동자의 힘이 제안한 공동투쟁본부 구상은 내가 보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97년 정치연대의 수준보다 못하다.
일단 진보 진영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변화되고 고착화된 조건이 있다. 97년에 국민승리21은 허겁지겁 선거용 종이정당을 만들고 좌충우돌하며 미숙한 선거를 치렀다면,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며 비교적 충분한 준비와 언론의 관심 속에 대선을 맞고 있다. 내부에서는 물론 외부에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구조는 이미 아니다.(그렇다고 97년에는 개입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정치연대를 통해 그 불가능성이 증명되기 이전에 사회당의 주체들은 이미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다만 주류의 공고화 정도에 따른 상대적 차이를 말한다. 이 차이는 일부 세력에게 개입의 환상과 현실의 자각 사이의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이 현실을 자각하지 않으려는 세력들이 민주노동당 안팎에 존재한다. 최근에는 구AMC 그룹 출신 일부가 민주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로 커밍아웃하며 이 흐름에 합세했다.)
전국연합과 전농이 기존의 범추를 사실상 거부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먼저 후보를 확정한 이상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하물며 노동자의 힘이 민주노동당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노동해방실천단 10,000명을 조직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무대응 혹은 투항(기분 나빠 마시라. 예전에도 이런 표현을 자주 썼지만, 지금은 더 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으로 이어진 97년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사실 오늘의 이 현실을 염려하였다. 좌파 진영 혹은 사회주의 세력의 독자적인 대선 전술의 필요성은 사실상 97년부터 호소되었다. 사회당은 이번에야말로 이를 성사시키고자 유무형의 갖은 노력을 다했다.
민중 경선 혹은 계급적 경선을 하고, 그 결과에 승복한다는 노동자의 힘 노선은 경쟁할 후보(사실 이조차 불투명하다.)를 낸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정치연대 방침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 때는 합의사항이라도 있었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경계하는 의미로 사퇴하지 않는 후보라는 것을 확인함과 함께 선거 강령에 몇 가지를 포함시키고, "대중투쟁과 결합하는 선거투쟁을 하기 위하여 제 민중세력과 함께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한다."는 합의문을 남겼다. 물론 이 합의사항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점은 이 번의 공동투쟁본부 구상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당시는 합의문에만 존재하는 공동투쟁본부였다면 지금은 그럴싸한 모양을 갖추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큰 차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선거에 종속된다는 점에서는 적어도 본질적으로 같다. 어쩌면 지금의 공동투쟁본부가 현실화되고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선거 전술과 맞물린다면 더 해악적일지도 모르겠다. 투쟁하고자 하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전망이 민주노동당의 테두리에 포섭될 가능성이 클 테니까.
한편, 경선이 요식행위로 끝나거나 무산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명명백백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선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에 상응하는 정치 행위를 끝까지 해야한다"(「노동자의 힘 2002년 대선 대응 방침과 해설」)는 것은 휴지 조각이 될지언정 그 흔한 공수표 한 장도 챙기지 못하는 꼴 아닌가. 97년에 정치연대는 합의문이 휴지 조각이 되었을 때 이를 명분 삼아 스스로를 추스리며 국민승리21을 비판하고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인가. 맘에 안 들어도 정윤광 선생의 표현처럼 "대의(大義)의 정치"를 위해 끝까지 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바로 경선의 함정이다.
몇 가지만 더 지적하자.
우선 97년 대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치연대의 평가를 지금의 노동자의 힘 동지들은 다시금 곱씹어 보기 바란다.
"정치조직, 전선조직 그리고 대중조직의 '기계적 결합'을 통해서는 어떠한 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후의 선거경과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이후의 진로와 관련하여 새겨두어야 할 지점이다."(「97 대선투쟁 평가」, 정치연대(준))
이를 부정할 생각이라면 현재의 공동투쟁본부가 '기계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일 수 있음을 노동자의 힘 동지들은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힘의 고차원적인 의도와는 달리 노동자의 힘의 행보는 현실적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허락한다.
"그동안 노동자의 힘이 민주노동당을 의회주의적, 개량적 정당으로 인식하고, 전국연합 역시 비판적 지지경향과 민족주의 세력으로 철저하게 비판해 왔던 점에 비추어볼 때 노동자 민중운동, 즉 범 진보진영과 대중적 공동투쟁과 더불어서 공동의 대선투쟁을 제의한 것 역시 커다란 진전이다."(정윤광, 「노동자 민중진영의 힘을 결집한 대중 투쟁과 대선투쟁 체제를 구축하자 - '노동자의 힘' 제안을 적극 환영하며」)
이러한 진전은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는 그간 노동자의 힘이 겉으로 내건 노선에 친화력을 느낀 사람들이 등을 돌릴 수 있는 자기모순의 계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미 이러한 모순은 자가발전하여 현실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한 토론회에서 노동자의 힘 정책국장은 이들 세력과 대선을 같이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국공합작의 비유를 들었다. 이 비유가 얼마나 몰상식한 것인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의 힘의 이번 행보는 민주노동당을 살려주면서 스스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회당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되고 있다. 이것이 97년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다. 심하게 말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힘에게 일종의 거간꾼 역할까지 기대한다. 노동자의 힘이 이를 스스로에 대한 모욕으로 느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당이 이제까지 사회주의세력(좌파진영)의 통합과 독자적인 후보방침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노동자의 힘의 제안은 민주노동당에는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을 민주노동당이 적극 수용한다면, 사회당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자의 힘은 또한 사회당과 함께 하는 방안을 협의하는, 그러한 역할도 할 것이다. 노동자의 힘과 함께 사회당마저 함께 한다면 범진보진영의 대선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우리의 대중 투쟁과 대선투쟁은 큰 힘을 얻을 것이다."(정윤광, 「노동자 민중진영의 힘을 결집한 대중 투쟁과 대선투쟁 체제를 구축하자 - '노동자의 힘' 제안을 적극 환영하며」)
노동자의 힘의 '新선거주의'
선거주의, 합법주의, 의회주의를 비판하며 97년 대선 이후 몇 차례의 선거를 우회해 온 노동자의 힘은 다시 97년 대선과 비슷한 대응의 수순으로 가고 있다. 물론 나의 주관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때보다 질이 떨어진다.
그런데 노동자의 힘이 그토록 비판해 온 선거주의는 바로 노동자의 힘 자신에게 겨누어진다. 물론 노동자의 힘의 선거주의는 단순한 표 획득에 목을 매는 선거주의와는 다르다. 노동자의 힘의 新선거주의란 선거 국면에서의 대세추종주의(노동자주의를 포함한다.)와 기회주의, 선거 환상의 혼합물을 일컫는다.
토론회나 사석에서 "사회당만 따로 갈거냐?"는 식으로 반문하는 노동자의 힘 동지들은 평소에 자신들이 선거에 무관심하거나 따로 간 것을 잊은 듯, 이번에는 자신의 본질을 비교적 솔직히 표현하고 있다. 대선은 대선인지라 이번에도 선거를 건너뛰면 안될 것 같은데, 사회당은 맘에 들지 않고 좌파들만 하면 왠지 고립될 것 같은 소심한 마음이 든 것이다. "솔직히 얘기해서 노힘은 이번 대선에서 좌파진영이 실리도 얻고 명분도 얻는 대안이 없을까 고민했다."고 노동자의 힘 정책국장 동지는 예의 그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다. 명분과 실리를 다 얻는 것이 최고의 정치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작금의 문제는 그런 피상적인 정치술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것이 명분과 실리를 다 얻는 방안이라는 것도 주관적 희망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힘이 이후에 빠져나갈 구멍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서 내가 판단컨대, 아니올시오다.
그리고 '계급적 경선' 과정이 노동해방의 주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근거 없는 선거 환상이다. 그리고 선거 혹은 선거연합 과정에서 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선거주의다. 선거연합적 단결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다. 지금으로부터 약 3달 전에 나온 글이다. 지나온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이리저리 뒤적이니 현재의 행보를 설명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있다.
"대선을 목전에 둔 이 시점에서 선거연합을 통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제자리잡기를 할 수 있다."(이종회, 「계급의 정치, 노동자 정치운동의 위기에서」, 『노동자의 힘』제9호)
대선 따로, 조직 따로는 없다!
사회당은 이제까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좌파라는 용어를 많이 써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좌파라는 표현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현재의 좌파라는 언명은 과거의 역사적 유물이다. 《통일좌파》는 사실 그 역사적 유물을 되살려 복원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당 외부는 물론이고 사회당 내부를 향한) 최후통첩이었다. 현재 그것의 결과가 드러난 상황에서 좌파라는 통칭은 이제 더욱 무의미해지게 되었다.
사회 혁명의 시기를 논외로 한다면 대선은 현재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간에서 국가 권력의 향배를 둘러싸고 해당 정치조직의 태도와 입장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고, 또 이를 드러내야 할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대선에 대한 태도와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그 정치적 지향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선을 따로 치른 세력들끼리 이후에 하나의 조직을 이룬다는 것은 그 다른 정치적 지향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는 사실상 어렵거나 아주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사회당이 좌파 공동으로 대선을 치르고 이후의 조직 발전 전망을 함께 하자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후에 하나의 조직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선을 함께 돌파하며 공통의 경험과 지반을 쌓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일상적 대중 투쟁과 아울러 선거 시기의 투쟁도 투쟁의 영역의 일부라면, 이는 투쟁의 과정에서 조직을 건설한다는 광범위한 상식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당은 선거 시기의 투쟁만 하자고 하지도 않았고, 이제껏 그렇게 활동해오지도 않았다. 일상적 혹은 계기적 대중 투쟁을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으로 상승시키기 위해 꾸준히 그리고 더욱 힘차게 활동할 것이고, 선거 시기의 투쟁 혹은 선거를 활용한 투쟁이 이러한 과제에 복무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했기에 노동자의 힘이 제안한 공동투쟁본부도 흔쾌히 수용하려 한 것이다.
노동자의 힘에게 제안한다!
- 민중 경선을 거부하고 실질적인 공동투쟁본부를 만들자!
이것은 개인적인 바램을 담은 제안이다.
노동자의 힘이 사회당과 함께 대선 투쟁을 할 맘이 없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민주노동당에 기대어(의지와 무관한 현실이다.) 대선을 치를 생각은 하지 말아달라. 즉, 이러한 결과로 나타나게 될 민중 경선을 거부하라.
이러한 공동투쟁본부는 어느 당의 선거 방침에도 종속되지 않는 틀로서 민주노동당, 사회당, 노동자의 힘 등 모든 단체의 투쟁할 의사가 있는 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자.
공동투쟁본부가 현재와 같이 대선에 의해 역규정될 경우 대선 이후의 전망을 보장할 수 없는 대선투쟁기구로 전락할 것이다. 대선에 긴박당하지 않는 실질적인 공동투쟁본부를 꾸려 이것을 상설적인 공동투쟁본부로 발전시키자.
이러한 공동의 투쟁 경험을 통해 사회주의 세력의 통일 단결의 기운을 새롭게 일구어내자.
나는 이 길만이 노동자의 힘이 명분과 실리를 다 얻을 수 있는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한다.
'스크랩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혁신을 위한 몸부림 - 허용만 (0) | 2007.01.27 |
---|---|
統一左派 - 사회당 대통령선거기획위원회 (1) | 2007.01.27 |
사회당 대선기획위원을 사퇴하며 좌파 동지들에게 (0) | 2007.01.27 |
민중경선비판과 사회주의대통령후보 추대 (0) | 2007.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