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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금권․관권으로 치러진 ‘11.2 방폐장 주민투표’ - 역사는 찬성률을 지지하지 않는다.

농민과 사회(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2005년 겨울호에 실린 원고이다.




금권․관권으로 치러진 ‘11.2 방폐장 주민투표’

- 역사는 찬성률을 지지하지 않는다. -

이헌석(청년환경센터 대표)

부안주민투표에서 ‘11.2 방폐장 주민투표’까지

지역주민들이 직접 지역 현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주민투표제도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여러 가지 제도 가운데 그 가치가 높은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공청회, 설명회 등을 통해 정책 입안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으나, 이는 대부분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보완하거나 의견을 듣는 정도였기 때문에 주민들의 직접적인 의사반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찬/반이 분명하게 대립되는 일부 사업에 있어 공청회, 설명회 같은 의사수렴제도는 ‘면죄부’로서 역할 - ‘반대의견을 일부 수렴했다’는 식의 구색맞추기 -로까지 이용되었기에 주민투표제도 도입과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은 시민사회단체의 주요 요구사항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부안 핵폐기장 문제가 터지면서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부안 사태가 생기기 전인 2003년 6월, 산업자원부는 △유권자 5% 이상이 유치를 청원한 곳 △지자체장이 주민투표를 원하는 곳 △지방의회가 유치를 결의한 곳 등 3가지 요건 중 한 가지를 만족하는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진행해 핵폐기장 부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영광, 군산 등 인접지역에서 핵폐기장 유치 움직임이 있었고, 부안도 그 중에 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7월 유치신청마감일이 가까워지자, 군산 등 나머지 지역이 유치를 포기하고 부안만이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하는 이변이 벌어진다. 부안군수는 그동안 지역주민 면담은 물론,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핵폐기장 반대입장을 밝혀오던 터라 부안군민들의 배신감은 매우 컸다. 특히 유치선언을 한 7월 11일은 군의회가 핵폐기장 유치청원에 대해 의결을 하는 날이었다. 부안군수는 군의회가 열리기 전인 오전 9시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해서 이전까지 갖고 있던 핵폐기장에 대한 입장을 전면적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벌어진 군의회 의결에서 핵폐기장 유치 청원 의결안은 7:5로 부결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부안 핵폐기장 문제에서 주민투표는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였다.

정부는 부안 단독으로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했기 때문에 주민투표 절차가 필요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가운데 부안 사태 초기의 주요 쟁점은 ‘주민투표’라기 보다는 군수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분노였다. 인구 7만밖에 안되는 부안군에서 1만명이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벌어지는가하면,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부안 항쟁’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격렬한 시위 앞에 ‘주민투표’는 추미애 의원 등 일부 정치인의 주장에 불과했고 그다지 힘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등교거부 등이 계속되고, 투쟁이 장기화되자 ‘주민투표’가 새로운 해결책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10월부터 정부측과 반대대책위, 그리고 전문가로 구성되어 운영된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부안 공동협의회)’에서 ‘연내 주민투표 실시’라는 중재안이 나온 것이다. 서로간의 평행선을 달리던 부안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 부안군민들에게 의견을 묻자는 것이었다.

이 중재안을 받아 들일 것인지에 대해 부안반대대책위 내부에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애당초 핵폐기장 유치신청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조건없는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부안주민투표가 끝나고 발간된 부안주민투표백서에서 ‘심각한 수준의 논란’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연내 주민투표 실시’는 반대대책위 내부의 주요한 쟁점이었다. 부안주민들의 반대 열기를 이어 ‘전면 백지화’를 주장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견과 핵폐기장 선정과 같은 국책사업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 등이 함께 나온 가운데 부안반대대책위는 오랜 회의와 토론을 거쳐 결국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전제로 주민투표안을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 측은 법적 미비와 행정절차문제, 내년 총선 연계 등을 이유로 주민투표안을 수용하지 않고, 이에 따라 부안주민들이 독자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주민투표를 통해 부안 주민들이 일구어낸 성과는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관(官)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투표인 명부와 투표감시 등 투표 관련 업무를 독자적으로 진행했다는 점과 이를 통해 소수의 의견이 아닌 부안군민 전체의 의견을 모아냈다는 점 등은 주민자치와 민주주의 실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성과였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항상 뒷전으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던 여성,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들이 전면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회상은 21세기 새로운 사회동력으로서 많은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핵폐기장 부지선정으로 문제를 국한시켜볼 때 부안 주민투표는 단일지역사안을 바탕으로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결정하였다는 한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에너지정책과 핵폐기장정책 등 많은 것들이 긴밀히 연관될 수 밖에 없는 핵폐기장 부지 선정의 문제를 단일지역사안으로 국한시킨 한계는 ‘한 지역에서 모두 반대해서 핵폐기장을 막을 수 있다’면 ‘한 지역에서 모두 찬성한다면 핵폐기장이 들어올 수도 있지 않겠냐’는 반대 논리를 열어둔 계기가 되었다.

심판 없는 게임, 사전주민투표 운동과 자유당 3.15 부정선거의 반복

이러한 우려는 지난 11월 2일 벌어진 ‘11.2 방폐장 주민투표’에서 현실로 나타난다.

부안은 주민 91.8%의 반대로 핵폐기장 문제에 대한 의사를 확인했지만, 아직 핵폐기장 문제는 해결책을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4년 2월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한 새로운 공고안을 발표하고 새로운 지역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자체 주민투표를 통해 지역주민 대부분이 ‘반대’의사를 갖고 있음을 확인한 부안마져도 정부가 ‘백지화’ 선언을 하지 않음에 따라 또다시 반대투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새로운 공고안에 어느 지역도 유치신청을 하지 않자 △ 중저준위 핵폐기물과 고준위 핵폐기물을 분리, △ 3000억 지원 등 지역지원 내역을 법제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핵폐기장 선정 계획을 추진한다. 최종적으로 2005년 6월에 발표된 이미 몇 차례 유사한 공고를 통해 핵폐기장 실패를 경험했던 정부가 그동안의 실패를 교훈삼아 내놓은 나름의 역작(!)이었다. 특히 부안에서 쟁점이 되었던 주민투표를 정비된 법령을 바탕으로 신청지역이 2곳 이하면, 임의로 지정해서 진행하도록 하는 것들을 공고안에 포함하여, 외관상 주민투표 등 형식적 절차를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구성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주민투표운동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사상 유례없는 금권․관권선거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삼척, 울진, 영덕, 경주, 포항, 군산 등 유치 운동이 벌어졌던 6개지역에서는 공히 한국수력원자력의 자금력과 공무원들의 조직력이 동원되어 대대적인 유치운동이 벌어진다. 집회가 벌어지는 운동장에서 저금통과 연필꽂이가 든 기념품을 대량 살포하는가 하면, 빵과 우유 등 음식물이 돌려지고, 각종 견학을 명목으로 관광버스로 지역주민들을 실어나르는 등 불행했던 과거에 진행된 정치 행태가 그대로 나타났다. 그동안 법령정비 등을 통해 사실상 아무런 규정이 없는 미국식 주민투표법을 도입해서 투표운동자금이나 인력동원들이 모두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치신청을 했던 모 지역군수는 “주민투표는 ‘심판없는 게임’이다”라고 표현할 정도 선거를 감독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와 주민투표를 주관하고 있는 산업자원부는 불법행위를 감독하기 보다는 오히려 방조하는 일들을 저지르게 된다.

무엇보다 ‘11.2 방폐장 주민투표’ 타락의 백미는 40%에 이르는 부재자신고율과 이를 둘러싼 부정투표였다. 주민투표가 진행된 군산, 경주,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은 공무원들을 동원한 경쟁을 통해 사상 유례 없는 40%의 부재자신고율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부재자신고서를 대신 작성한 ‘대필 신고서’가 무더기로 발견되는가 하면, 사회복지수급자들을 대상으로 부재자신고를 강요하는 등 부재자 신고 '실적채우기‘가 매우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전체 25만명의 부재자신고서 중 0.6%인 1500여명을 대상으로 찾아낸 것만 800여장이나 되었고, 4개 지역대책위 중 한 곳인 영덕 대책위가 지역조사를 통해 밝혀 낸 것만 41.4%에 달했다. 또한 부재자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장이 대신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거나, 지역주민이 기표한 투표용지에 다시 기표를 하여 무효표를 만드는 것 같은 기막힌 일들까지 벌어졌으니, 이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한편 지역간 경쟁이 심했던 주민투표운동기간에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다시 살아나 주민투표의 의미를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경상도 문딩이들에게 이제는 질 수 없다”는 현수막이 군산에 나붙는가하면, 똑같은 현수막을 만들어 “이것은 ‘군산’에 걸린 현수막입니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여 경주에서 활용하는 등 핵폐기장 유치를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쟁’으로 몰고 갔다. 그 밖에 주민투표운동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공무원들이 유치 활동을 위해 삭발을 하고, 유인물 배포에 나서는 등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 때나 봄직한 일들이 21세기인 지금, 4개 지역에서 벌어진 것이다.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저버린 언론의 백태

한편 이번 핵폐기장 주민투표에 있어 불공정한 언론의 태도도 큰 역할을 했다.

재정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언론일수록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 불공정 보도는 단지 핵폐기장을 둘러싼 쟁점을 알리는 정도를 벗어나 사실상 유치 홍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주민투표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벌어진 보도 형태를 보면, 일본, 프랑스 등 외국의 핵폐기장의 깨끗한 모습만을 알린다던가, 정부의 입장을 단순히 전달하는 정도를 벗어나 핵폐기장의 경제성 강조․투표 찬성률제고․공무원개입 용인 등 유치측의 입장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포항에서는 지역에서 유치측 입장을 대변하는 경북일보 앞에서 반대대책위가 천막농성이 벌어지기도 했고, 전북 군산의 경우, 전북 민언련이 핵폐기장을 둘러산 지역언론의 보도경향을 모니터해서 “편향성과 함께 사실왜곡과 부정적 의제 설정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전북 민언련의 지역언론 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핵폐기장 주민투표를 앞둔 9월 5일부터 10월 12일까지 한달동안 전북지역 4대 일간지를 모니터한 결과, 총 211건의 핵폐기장 관련 기사 중 61.6%인 130건이 명백한 찬성입장인데 비해, 명백한 반대입장 기사는 10%에 불과한 21건과 중립적 기사는 28.4%인 60건으로 드러났다. 지역별로 심각한 부정행위가 문제였던 핵폐기장 주민투표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결과는 지역 언론이 비판적 분석과 대안제시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균형감각까지도 저버렸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요하지만 빠진 문제 - 안전성 문제

사실 핵폐기장 문제에 있어 최우선 요소는 안전성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핵폐기장은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처분하는 곳으로서 언론을 통해 선전하는 장갑, 필터, 작업복 이외에도 핵발전소 건축폐기물, 각종 동위원소 등 높은 방사능을 갖고 있는 물질들을 포함한다. 방사능 준위가 높기 때문에 중준위 폐기장의 건설은 전세계적으로도 예를 찾기 힘들다. 또한 미국 등 핵발전을 먼저 시작한 일부 국가에서도 저준위 핵폐기장을 지었다가 플루토늄 등이 밖으로 새어나와 폐기장을 폐쇄하는 일들이 발생한 바 있다. 핵폐기물은 다른 폐기물과 달리 자연계로부터 ‘격리’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처분 방법이 없다. 하지만 격리기간이 보통 300~400년 이상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핵폐기장 선정과정에서 정부가 지질의 안정성과 부지적합성을 조사하기 위해 투여한 시간은 2~3개월에 불과했다. 지난 6월에 핵폐기장 선정 일정 발표에서 11월 2일 주민투표까지 걸린 시간을 모두 합하더라도 채 6개월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에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된 경주의 경우, ‘역사상 진도 7이상이 17회, 1978년 이후 11회의 기록’이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별문제될 것이 없다는 내용만 간략히 서술되는 선에서 조사를 마쳤다.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국회 등이 상세보고서 제출을 요구했으나 결국 받지 못했다.)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된 지금도 어떤 방식으로 공사를 할 지에 대해선 결정되지 않은 채 2008년까지 공사를 마치겠다는 날짜만 정해져 있다. 이러니 정부가 핵폐기물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조차 의심할 수 밖에 없다.

92.2%가 찬성한 유신헌법. 그러나 역사는 찬성률을 지지하지 않는다.

주민투표가 끝나고 경주가 89.5%의 찬성으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자, 정부는 19년동안의 숙제가 풀렸다며 축포를 터뜨리기에 바빴다. 또한 주민투표가 실시되기 불과 며칠 전까지 부정선거시비, 관권선거 시비를 보도하던 언론들도 높은 찬성률로 핵폐기장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꺼내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국민투표로 국민들의 민의가 어떻게 조작되어 왔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다. 72년 유신헌법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91.9% 투표율에 92.2%의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75년 진행된 국민투표에서도 74.4% 찬성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주민투표 결과가 제대로 된 민의를 수렴했다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관권과 금권에 의해 왜곡된 투표가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로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했던가? 30여년이 지난 지금 핵폐기장 건설을 무리하게 강행하려는 정부의 판단 착오에 의해 우리의 아픈 역사는 반복되었다. 2003년 부안 항쟁이후 핵폐기장 문제를 단지 지역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체계의 문제나 진행 형식 정도로 생각했던 정부는, 그동안 미비했다고 생각한 지역지원을 법률로 보장하고, 지자체간의 경쟁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법을 추진해 왔다. 언제나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참여정부였기에 그들이 생각하기에 주민투표를 통한 핵폐기장 건설 추진은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관권-금권선거라는 ‘잠자는 용’을 깨우게 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우려와 비판을 제대로 듣는 데 소홀했고, 결국 그 우려는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만약 찬성률 89.5%라는 수치를 중심으로 핵폐기장 건설을 강행한다면, 우리사회는 후퇴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안전성이나 지역 적합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지적도 무시하고, 주민투표 대상을 해당 지역만으로 국한시킨다는 한계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금권과 관권이 동원된 ‘11.2 방폐장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고 핵폐기장을 짓겠다고 이야기하는 정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 것인가? 정말 후손들에게 이러한 과정을 있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당당한가?

이러한 가운데에서 높은 찬성률로 핵폐기장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정부를 보고 있으면,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은 경시’하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모습을 보고 있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후퇴시키고,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없더라도 일단 ‘짓고 보자’식의 일들을 우리는 지금까지 반복해 왔다. 핵폐기장 유치에 성공했다고 ‘카 퍼레이드’나 벌이고 서로의 공적을 치켜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민투표 승/패를 떠나 한편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 역사는 이러한 비극을 냉험히 평가할 것이라는 점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