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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11.2 방폐장 주민투표’를 둘러싼 핵폐기장 반대운동 평가와 과제



환경과 생명 2005년 겨울호에 실렸던 글이다.
환경과 생명에서 바꾼 제목은 "반핵운동의 새 좌표, 지속적인 풀뿌리 대중운동"이다.
흔히 출판사에서 오자, 탈자, 비문을 교정하기 때문에 출판된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제 무엇을 만들어 갈 것인가?

- ‘11.2 방폐장 주민투표’를 둘러싼 핵폐기장 반대운동 평가와 과제 -

이헌석(청년환경센터 대표)

주민투표는 끝나고 후폭풍이 몰아쳤다.

주민투표에서 아깝게(!) ‘1등’을 하지 못한 군산과 영덕은 물론이고, 심지어 ‘1등’을 한 경주에서도 심심치 않게 주민투표 후유증이 들린다. 주민투표가 있고 바로 다음날 전주에서는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문규현 신부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있는 가하면, 노동조합이 반대를 했다는 이유로 그 회사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를 부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반대측 인사가 언어 폭력을 당하는 등 다양한 일들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핵폐기장 유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볼 때, ‘11.2 방폐장 주민투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 ‘한판 승부’였기에 주민투표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과 불법은 생각하지도 않고 ‘너희 때문에 주민투표에서 졌다’는 감정에 치우친 이러한 대응이 향후 미래세대에게 어떠한 웃음꺼리가 될지 한번쯤 스스로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경주에서 확인된 89.5%라는 찬성률은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은 경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와 맞물려 경주 핵폐기장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있었던 불법과 탈법에 대한 처벌은 뒷전인 채 89.5%라는 결과만을 인정하라는 강압까지 사회적 분위기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에서 그동안 있었던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정리․평가하고 향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를 감추거나 숨기기보다는 냉철한 평가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부안주민투표에서 ‘11.2 방폐장 주민투표’까지

지역주민들이 직접 지역 현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주민투표제도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여러 가지 제도 가운데 그 가치가 높은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공청회, 설명회 등을 통해 정책 입안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으나, 이는 대부분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보완하거나 단순히 의견을 듣는 정도였기 때문에 주민들의 직접적인 의사반영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특히 찬/반이 분명하게 대립되는 일부 사업에 있어 공청회, 설명회 같은 의사수렴제도는 ‘면죄부’로서 역할 - ‘반대의견을 일부 수렴했다’는 식의 구색 맞추기 -로까지 이용되었기에 주민투표제도 도입과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은 시민사회단체의 주요 요구사항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부안 핵폐기장 문제가 터지면서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부안 사태가 생기기 전인 2003년 6월, 산업자원부는 △유권자 5% 이상이 유치를 청원한 곳 △지자체장이 주민투표를 원하는 곳 △지방의회가 유치를 결의한 곳 등 3가지 요건 중 한 가지를 만족하는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진행해 핵폐기장 부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영광, 군산 등 인접지역에서 핵폐기장 유치 움직임이 있었고, 부안도 그 중의 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7월 유치신청마감일이 가까워지자, 군산 등 나머지 지역이 유치를 포기하고 부안만이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하는 이변이 벌어진다. 부안군수는 그동안 지역주민 면담은 물론,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핵폐기장 반대입장을 밝혀오던 터라 부안군민들의 배신감은 매우 컸다. 특히 유치선언을 한 7월 11일은 군의회가 핵폐기장 유치청원에 대해 의결을 하는 날이었다. 부안군수는 군의회가 열리기 전인 오전 9시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해서 이전까지 갖고 있던 핵폐기장에 대한 입장을 전면적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벌어진 군의회 의결에서 핵폐기장 유치 청원 의결안은 7:5로 부결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부안 핵폐기장 문제에서 주민투표는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였다.

정부는 부안 단독으로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했기 때문에 주민투표 절차가 필요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가운데 부안 사태 초기의 주요 쟁점은 ‘주민투표’라기 보다는 군수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분노였다. 인구 7만밖에 안되는 부안군에서 1만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벌어지는 가하면,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부안 항쟁’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격렬한 시위 앞에 ‘주민투표’는 추미애 의원 등 일부 정치인의 주장에 불과했고 그다지 힘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등교거부 등이 계속되고, 투쟁이 장기화되자 ‘주민투표’가 새로운 해결책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10월부터 정부측과 반대대책위, 그리고 전문가로 구성되어 운영된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부안 공동협의회)’에서 ‘연내 주민투표 실시’라는 중재안이 나온 것이다. 서로간의 평행선을 달리던 부안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 부안군민들에게 의견을 묻자는 것이었다.

이 중재안을 받아 들일 것인지에 대해 부안반대대책위 내부에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애당초 핵폐기장 유치신청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조건없는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부안주민투표가 끝나고 발간된 부안주민투표백서에서 ‘심각한 수준의 논란’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연내 주민투표 실시’는 반대대책위 내부의 주요한 쟁점이었다. 부안주민들의 반대 열기를 이어 ‘전면 백지화’를 주장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견과 핵폐기장 선정과 같은 국책사업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 등이 함께 나온 가운데 부안반대대책위는 오랜 회의와 토론을 거쳐 결국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전제로 주민투표안을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 측은 법적 미비와 행정절차문제, 내년 총선 연계 등을 이유로 주민투표안을 수용하지 않고, 이에 따라 부안주민들이 독자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주민투표를 통해 부안 주민들이 일구어낸 성과는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관(官)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투표인 명부와 투표감시 등 투표 관련 업무를 진행했다는 점과 이를 통해 소수의 의견이 아닌 부안군민 전체의 의견을 모아냈다는 점 등은 주민자치와 민주주의 실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매우 큰 성과였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항상 뒷전으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던 여성, 청소년 등이 운동을 이끌어가면서 21세기 새로운 사회발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핵폐기장 부지선정으로 문제를 국한시켜볼 때 부안 주민투표는 그 한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국가 에너지정책과 핵폐기장정책 등 많은 것들이 긴밀히 연관될 수 밖에 없는 핵폐기장 부지 선정의 문제를 단일지역사안으로 국한시킨 한계는 ‘한 지역에서 모두 반대해서 핵폐기장을 막을 수 있다’면 ‘한 지역에서 모두 찬성한다면 핵폐기장이 들어올 수도 있지 않겠냐’는 반대 논리를 열어둔 계기가 되었다.

심판 없는 게임, 사전주민투표 운동과 자유당 3.15 부정선거의 반복

이러한 우려는 점차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부안은 주민 91.8%의 반대로 핵폐기장 문제에 대한 의사를 확인했지만, 아직 핵폐기장 문제는 그 해결책을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4년 2월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한 공고안을 새로 발표하고 새로운 지역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에 따라 자체 주민투표를 통해 지역주민 대대분이 ‘반대’ 의사를 갖고 있음을 확인한 부안마저도 정부가 ‘백지화’ 선언을 하지 않음에 따라 후보지로 등록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새로운 공고안에는 어느 지역도 유치신청을 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또다시 △ 중저준위 핵폐기물과 고준위 핵폐기물을 분리, △ 3000억 지원 등 지역지원 내역을 법제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핵폐기장 선정 계획을 추진한다. 최종적으로 2005년 6월에 발표된 이 공고안은 그동안 몇차례 유사한 공고를 통해 실패를 경험한 정부가 그동안의 실패를 교훈삼아 내놓은 나름의 역작(!)이었다. 특히 부안에서 쟁점이 되었던 주민투표를 정비된 법령을 바탕으로 제도화하고, 신청지역이 2곳 이하이면 임의로 주민투표 지역을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치밀한 계획도 포함하게 된다. 이처럼 그동안 대부분 구두 약속 수준에서 머물렀던 지원, 제도 등을 법제화하여 외관상 형식적 민주주의를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이게 구성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주민투표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11.2 방폐장 주민투표’는 사상 유례 없는 금권․관권선거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삼척, 울진, 영덕, 경주, 포항, 군산 등 유치 운동이 벌어졌던 6개지역에서는 공히 한국수력원자력의 자금력과 공무원들의 조직력이 동원되어 대대적인 유치운동이 벌어진다. 집회가 벌어지는 운동장에서 저금통과 연필꽂이가 든 기념품을 대량 살포하는가 하면, 빵과 우유 등 음식물이 돌려지고, 각종 견학을 명목으로 관광버스로 지역주민들을 실어나르는 등 불행했던 과거의 정치 행태가 그대로 나타났다. 그동안 법령정비 등을 통해 사실상 아무런 규정이 없는 미국식 주민투표법을 도입해서 투표운동자금이나 인력동원들이 모두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치신청을 했던 모 지역군수가 “주민투표는 ‘심판없는 게임’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선거를 감독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와 주민투표를 주관하고 있는 산업자원부는 불법행위를 감독하기 보다는 오히려 방조하는 모습도 비일비재했다.

금권․관권 주민투표로 변질된 ‘11.2 방폐장 주민투표’의 백미는 40%에 이르는 부재자신고율과 이를 둘러싼 부정투표였다. 주민투표가 진행된 군산, 경주,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은 공무원들을 동원한 경쟁을 통해 사상 유례 없는 40%의 부재자신고율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부재자신고서를 대신 작성한 ‘대필 신고서’가 무더기로 발견되는가 하면, 사회복지수급자들을 대상으로 부재자신고를 강요했던 사례가 발각되었다. 이는 부재자 신고 '실적 채우기‘가 매우 광범위하게 벌어지면서 생긴일이다. 이런 식으로 부정신고된 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전체 25만명의 부재자신고서 중 0.6%인 1500여명을 대상으로 찾아낸 것만 800여장이나 되었고, 4개 지역대책위 중 한 곳인 영덕 대책위가 지역조사를 통해 밝혀 낸 것만 41.4%에 달했다. 또한 부재자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장이 대신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거나, 지역주민이 기표한 투표용지에 다시 기표를 하여 무효표를 만드는 것 같은 기막힌 일들까지 벌어졌으니, 이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한편 지역간 경쟁이 심했던 주민투표운동기간에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다시 살아나 주민투표의 의미를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경상도 문딩이들에게 이제는 질 수 없다”는 현수막이 군산에 붙는 것도 모자라, 똑같은 현수막을 만들어 “이것은 ‘군산’에 걸린 현수막입니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여 경주에서 활용하면서 핵폐기장 유치를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쟁’으로 몰고 갔다. 그 밖에 주민투표운동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공무원들이 유치 활동을 위해 삭발을 하고, 유인물 배포에 나서는 등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 때나 봄직한 일들이 21세기인 지금, 4개 지역에서 벌어진 것이다.

‘11.2 방폐장 주민투표’를 통해 뛰어 넘지 못한 벽

이러한 총체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왜 경주를 비롯한 군산, 영덕, 포항 등 모든 지역에서 60%가 넘는 찬성률이 나왔는가? 그리고 89.5%의 찬성률을 기록한 경주의 사례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앞으로 더 많은 논의를 통해 ‘11.2 방폐장 주민투표’의 결과에 대한 분석들이 이루어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핵폐기장 반대운동 진영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핵폐기장 반대운동 진영이 뛰어넘지 못한 현실의 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자체와 중앙정부에서 쏟아 부은 물량 공세를 뛰어넘지 못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물량 공세였다. 핵폐기장이나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사업자 측이 물량공세를 퍼 붓는 일은 일반적이다. 재정적 지원은 물론이고, 각종 정책적 지원 약속, 인력동원을 통한 대규모 선전․홍보 작업까지 전방위적인 작업 속에서 핵폐기장과 핵발전소 문제가 진행되어 왔다.

이번 주민투표의 경우, 경주와 군산 시의회가 공식적인 예산 편성을 통해 사용한 금액은 각각 12억원과 3억 6천만원이었다. 그나마 포항과 영덕은 공식 예산 편성을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유치활동에 이 금액만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4개 지역 모두 2003년 부안 이상의 물량 공세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공중파와 케이블 TV의 프라임 시간대에 집중 배치된 홍보 CF, 지역언론, 고속도로 광고판, 각종 홍보물과 기념품, 견학을 빙자한 각종 향응제공, 공무원들이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행위 등 부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그대로 4개지역에서 벌어졌다. 부안 문제가 불거질 당시 10개월동안 부안에서 사용한 주민설득비용이 313억원이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번에는 최소 4배 이상의 금액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 당시 이러한 물량공세는 부안군수의 독단적 결정과 군민들의 일치단결로 빛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물량공세가 반감을 사는가 하면, 역설적으로 부안 에 핵폐기장이 건설되는 것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11.2 방폐장 주민투표’에서 부안 때처럼 물량 공세를 뒤짚어 엎을 만한 ‘형식적 민주주의의 결함’이 발견 된 것은 한참 유치 홍보가 진행되던 10월초였다. 주민투표 부재자신고과정에서 각종 불법이 자행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대규모 물량공세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난 이후라 큰 흐름을 뒤짚어 엎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사이 이미 많은 홍보․선전물들이 지역에 배포되었고, 많은 지역주민들은 향응을 제공받았다. 또한 일반 시민들은 ‘죽음을 상징하는 핵폐기장’이 아니라 ‘(옷가지와 필터 따위만 있는) 네모난 병원’이라는 포장된 내용으로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앞으로도 핵과 관련한 일련의 일들이 벌어진다면, 유치 측의 물량공세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비용이 보통 5조원이 넘는 등 핵산업 자체가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물량공세는 크지 않은(!) 홍보비용 지출이다. 따라서 향후에도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될 대규모 물량공세에 대한 반핵운동진영의 새로운 논리개발이 요구된다. 특히 앞으로 설명할 지역개발논리와 물량공세가 맞물릴 경우 그 파급력은 더욱 크기 때문에 총체적인 대책마련이 요구될 것이다.

둘째, 지역경제논리와 지역감정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주민투표운동이 시작되자, 유치측은 지역경제 발전 논리와 지역감정을 가지고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3000억원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양성자가속기 사업으로 2만명의 인구유입효과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건설된다, 지자체 차원의 각종 지원이 이루어진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각종 지원 약속이 남발되었다. 핵폐기장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있었던 각종 지원 약속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지원을 약속하는 유치 측의 전술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지역주민들의 마음이 달라졌던 것이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지친 많은 이들은 ‘핵폐기장 건설을 안하는 것보다야 경제가 나아지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부안의 위도 주민들이 초기에 주민들에 대한 ‘직접 보상’을 기대하면서 찬성 입장을 내었다면, 이번 4개지역 주민들은 ‘직접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제 불황으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털어놓았다. 핵폐기장 유치측이 유포하는 ‘먹고 죽을 양잿물도 없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나오면서 확인할 수 없는 경제발전이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위안을 삼고자하는 이들의 현실적 벽이 있었다.

이러한 지역경제발전 환상은 2000년대 중반을 살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적인 과제이다. 새만금 건설을 둘러싼 지역경제논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지율스님 단식으로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문제가 불거지자 가장 먼저 나왔던 것이 ‘지율스님이 부산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경제개발논리였다. 뚜렷한 근거나 자료로 설명되지 않더라도 - 핵폐기장과 천성산 문제 모두 경제발전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발론자들은 ‘**조의 경제 효과’가 있다는 막연한 기대로 불황에 지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우리사회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인 지역감정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국민의식의 향상으로 정치판에서 지역감정 주장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일부 주장은 이번에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들어났다. 군산의 지역감정 유발 플랭카드(‘경상도 문딩이들에게 이제는 질 수 없다’)와 이를 역이용한 경주의 전략은 주민투표운동기간 내내 지역의 주요 화제였고, 투표율과 찬성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영욕을 위해 지역감정을 자극할 경우, 얼마든지 과거와 같은 지역대결국면이 나타날 수 있으며, 그 효과가 전혀 반감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지역감정 문제는 아직 종결된 문제가 아니며 단지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문제라는 말이다.

지역경제개발논리와 지역감정문제는 핵폐기장의 찬성/반대를 떠나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 문제들은 핵폐기장이나 다른 환경사안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사회진보를 가로 막는 논리로 활용될 것이다. 이번 ‘11.2 방폐장 주민투표’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단지 환경단체와 해당 지역주민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이번 핵폐기장 주민투표의 결과를 심각히 받아들이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히려 핵폐기장 주민투표에서 핵폐기장의 안전성 문제 같은 환경적 고려나 에너지 정책의 문제는 주요 이슈로 부각되지도 않았다. 주민투표기간 내내, 민주주의와 경제개발논리가 주요한 논점이었고 이는 아직도 우리사회가 이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셋째, 주민투표가 갖고 있는 형식 민주주의의 허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주민투표제도 도입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크게 환영받았다. 특히 2003년 부안사태를 거치면서 주민투표를 통해 지역현안을 해결하는 것은 하나의 모범사례로까지 칭송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 형식만이 강조되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고 있는 지를 ‘11.2 방폐장 주민투표’는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식 주민투표법을 도입해서 투표운동비용은 물론 모든 투표운동방식에 제한이 없었던 이번 주민투표법은 한국의 독특한 정치적 현실과 맞물리면서 사상 유례없는 금권-관권 선거 사례를 남겼다. 40%에 이르는 부재자신고, 이장이 투표용지에 임의로 투표하는 사례, 개인적으로 만든 투표함이 돌아다니는 사례, 공무원이 개입된 투표운동 지시 회의 등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수십 년 이상 후퇴시키는 일들이 벌어졌다.

또한 주민투표 이후의 모습은 어떠한가? 투표에서 졌다고 반대단체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협박과 폭언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현실은 분명, ‘민주주의의 꽃’인 주민투표 본연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특히 지역 여론의 토호세력과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서 형식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민주주의 구현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 없이 제대로된 민주주의 구현은 요원한 일이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들어난 것처럼 지자체장과 건설업자등 지역토호들이 유착해서 만들어내는 형식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원래 의미와 무관한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것이다.

형식이 아무리 좋다한 들, 내용이 갖춰지지 않으면 그 원래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것은 당연할 텐데, 형식과 내용 모두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주민투표’라는 껍데기만 갖고 민주주의라고 칭송하고 있는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이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11.2 방폐장 주민투표’는 앞으로 형식적인 제도를 보완하는 가운데,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위해 진보진영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길 것이다.

넷째, 대중운동으로서 반핵운동을 광범위하게 조직하지 못했다.

반핵운동은 대중운동인가? 나는 이러한 질문에 ‘절반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핵폐기장․핵폐기장 반대운동의 모습을 보면 반핵운동은 대중운동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광범위한 지역주민들과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운동에 동참하며, 이는 - 이미 많이 확인한 것처럼 - 큰 힘으로 나타나왔다.

그러나 현안이 없는 일상적인 동안에 반핵운동은 대중운동의 모습이 아니다.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에서 열심히 운동을 펼치는 몇몇 활동가들만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핵운동 - 탈핵정책을 고민하며, 에너지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을 중심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지역의 현안이 있을 때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핵문제를 고민하고 운동을 펼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현안이 없을 때 이들은 자신의 생업이나 자신의 단체 - 농민회나 노조, 일반시민단체의 운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있었던 많은 반핵운동이 환경운동이나 반핵․에너지 문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기보다는 지역현안 해결, 민주주의 문제 극복 등을 중심으로 고민이 시작되어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형태는 단기적인 투쟁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투쟁이 장기화되거나 일상적인 사안 대응을 하는 데에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11.2 방폐장 주민투표’에서 이러한 한계는 잘 들어났다.

군산, 영덕, 경주 등 대부분의 지역이 핵폐기장 문제를 벌써 2~3년째 반복해서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한 피로감은 적지 않았다. 또한 민주주의적 모순처럼 찬/반이 분명히 구분되기 보다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빌미로 찬/반 진영을 애매하게 흩뜨려 놓은 정부 측의 전략으로 인해 군산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중운동으로 확대되기 못하고 반대운동 측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일상적으로 반핵․에너지문제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어 있고, 이를 기반으로 조직들이 구성되었다면,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유치운동 측은 공무원과 통장-이장 등 관권조직 뿐만 아니라 유치에 혈안이 된 지역 토호세력들까지 가세하면서 그 세를 불려갔다. 금권-관권선거의 사례로 지적되었던 이러한 유치측의 조직동원은 결과적으로 주민홍보와 주민투표 참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소결 - 반핵운동, 이제 지속적 대중운동으로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한 반핵운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멀리 본다면, 고준위 핵폐기물이 안정화되는 수만년 동안 이를 둘러싼 각종 잡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반핵운동이 단기적인 싸움에 급급하지 않고 멀리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 싸움을 하는 데에는 지역운동단체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반핵운동이 이러한 단기적이고 큰 싸움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20여년 동안 반핵운동은 그렇게 움직여 왔으며, 이 결과 정부의 일방적인 핵발전 중심의 전력정책을 조금씩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시야를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반핵운동이 민주주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이제는 정부가 (그것이 실질 민주주의 구현이든 그렇지 않든)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틀을 갖고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11.2 방폐장 주민투표’는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와 지역경제개발논리, 지역감정 등이 맞물릴 때 핵폐기장을 둘러싼 진실은 사라지고, 주민투표가 정부의 일방적인 계획 추진을 용인하는 또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핵폐기장의 건설 방식(천층처분이냐, 동굴처분이냐 따위의 문제들)이나 핵폐기물 관리를 위한 기본적인 제도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앞으로 경주 핵폐기장이 제대로 건설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러나 핵폐기장과 핵발전소 반대운동을 해 왔던 반핵운동진영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한다면, - 조심스럽지만 어쩌면 - 정부와 핵산업계의 뜻대로 모든 계획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말 것이다. 핵발전을 통해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을 안착화하고, 각종 환경적 문제를 은폐하면서 핵산업계의 이익이 충실한 그러한 계획 말이다. ‘11.2 방폐장 주민투표’는 이를 막아내기 위한 방법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기적인 싸움이 아닌 장기적인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대중운동의 필요성과 그를 통해 지역경제발전논리, 지역감정 등 고질적인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갈 풀뿌리조직의 필요성 같은 것들 말이다.

1972년 유신헌법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91.2%가 투표하고, 92.2%가 찬성했지만, 이러한 투표율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은 없다. 역사는 오히려 높은 찬성률을 만들어내었던 당시의 불행함을 기록하고 전하고 있다. 당장에는 경주 핵폐기장을 둘러싼 높은 찬성률이 운동의 걸림돌이 될 지라도 이를 극복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한 제대로 된 방안을 만들어 간다면, 역사는 2005년 11월 2일에 진행된 주민투표를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아픔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