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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방재, 끊임없는 감시만이 해결책이다

http://hamgil.or.kr/bbs/zboard.php?id=200610&no=16

함께사는 길 2006년 10월호


방사능방재, 끊임없는 감시만이 해결책이다 _ 이헌석
고리, 월성 핵발전소 지역 방재시스템을 둘러 보고


“만약 체르노빌 같은 사고가 한국에서 일어난다면…”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알려온 반핵운동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표현은 낯설지 않다. 체르노빌 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고였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큰 피해가 있을지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인 사고이기 때문에 체르노빌 사고를 알리는 것은 반핵운동의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반핵운동진영은 그동안 체르노빌 참상을 알리는 각종 사진 자료, 피해자들의 증언, 사고의 원인과 피해 상황 분석 자료, 한국에서 유사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생길 수 있는 과학적 시뮬레이션 결과, 사고 당시 체르노빌에 살고 있던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체르노빌 사고와 핵발전의 위험성을 설명해왔다.

‘핵안전을 위한 국회포럼’, 핵발전소 지역을 방문하다
‘핵안전을 위한 국회포럼’(이하 핵안전포럼)은 체르노빌 사고 20주기를 맞아 조금 새로운 각도에서 체르노빌 사고의 교훈을 얻고자 제안되었다. 지금까지 사고와 위험성을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핵안전포럼은 실천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한국에서의 핵안전과 방재문제를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제안, 구성되었다.

현재 핵안전포럼은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탈핵과 대안적 전력정책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주최하고 시민환경연구소와 민주노동당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으며 국회, 환경단체, 관련 전문가 외에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핵관련 기관, 과학기술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방사능방재에 대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운영되고 있다.

체르노빌 핵사고의 영향과 환경오염, 방사능방재 대책과 문제점, 국내 원전 역학조사 등의 주제에 대해 수차례 내부 토론을 통해 방사능 방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포럼 관계자들은 지난 8월 25일 고리와 월성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방사능방재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현장답사를 다녀왔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핵발전소는 1978년 우리나라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핵발전소로 현재 4기의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추가로 4기의 발전소가 건설중에 있다. 고리 핵발전소는 해운대와 약 20킬로미터(직선거리 기준), 부산시청과 약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등 인구 밀집지역과 매우 인접해 있는 발전소이다.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 핵발전소 역시 현재 4기가 가동되고 있으며 현재 2기가 건설중이다. 월성 핵발전소 인접지역에는 작년에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가 확정된 중저준위 핵폐기장도 들어설 예정이어서 고리와 월성 핵발전소는 인구밀집 지역인 부산-울산-경주를 있는 대규모 핵발전 단지로 그동안 반핵운동진영의 비난을 받아왔던 지역이다.

아직은 너무나 다른 입장들
질문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10킬로미터보다 더 넓은 지역으로 피해가 확산될 경우, 그에 대비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있나요? 체르노빌 사고의 경우 현재까지도 30킬로미터 주변까지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데… 답변 1 내가 왜 여기서 야단을 맞고 있는지 모르겠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의 선정은 상급기관에서 하는 것이다.
답변 2 체르노빌 발전소와 우리나라의 발전소는 설계부터가 다르고 방호벽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

흔히 방사능방재에는 찬핵, 반핵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신규발전소 건설이나 폐기장 건설처럼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분명하게 나뉘는 문제와 달리 방사능방재는 발전소 안전뿐만 아니라 유사시 주민안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통의 합의점을 찾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지역방문을 통해 현장에서 느낀 방사능방재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현실은 조금 달랐다.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묻는 환경단체 관계자의 질문을 담당 공무원이나 발전소 관계자는 국정감사나 항의방문 때 진행되는 질문처럼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안전성을 믿어달라고 반복하는 발전소 관계자의 대답은 ‘안전한 에너지’, ‘행복한 에너지’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홍보 CF와 별반 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이를 단지 상호간의 신뢰문제나 의사소통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지난 20여 년간의 골이 너무나 깊은 것이었다. 아직도 신규발전소 건설 문제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고리와 월성을 제외한 나머지 핵발전소 가동지역은 신규발전소 건설계획이 없다- 서로의 발언 하나하나가 예민한 문제이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걸음마 단계에 머문 방재시스템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있다. 2003년에 제정된 「방사능방재대책법」이 발효됨에 따라 뒤늦게나마 방사능방재에 대한 체계들이 잡혀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민방위기본법」이나 「재난관리법」 등을 통해 세워지던 방재대책이 방사능방재에 맞춰 재구성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에 현장방문을 통해 둘러본 ‘월성현장방사능방재지휘센터’를 시작으로 4군데 핵발전소 지역에 현장지휘센터가 건설되고 중앙정부까지 참여하는 방재훈련이 정례화되어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속도는 아직 늦다. 아직 현장지휘센터는 월성에만 건설되어 있고 고리 핵발전소가 위치한 기장군의 경우 담당공무원 1명이 다른 업무와 함께 방사능방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등 법률제정 이후 제대로 된 재난시스템이 가동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현재의 방재시스템이 정부와 사업자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 핵발전소 안전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온 이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현장에서 살펴본 지역주민은 아직까지 ‘대피의 대상’나 ‘통보의 대상’이지 ‘협의의 대상’은 아니었다.

앞서 나온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의 예처럼 사고의 내용과 경중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점들이 고려되지 않고 있는가 하면, 대부분 노인층인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 대한 세부적인 고려가 부족한 점, 방사능방재에 대한 지역주민이나 환경단체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점 등은 방사능방재가 아직은 걸음마 단계임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방사능방재, 끊임없는 감시만이 해결책이다
‘절대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다면 방사능방재는 필요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체르노빌 사고 이외에도 99년 일본에서 일어난 JCO 사고(핵연료 임계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지역주민 등 700여 명이 피폭됨)처럼 ‘결코 안전하다.’는 논리의 허점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사능방재는 계속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업자에게만 안전을 맡기는 것은 더욱 막아야 하기에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들이 감시자가 되어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체르노빌과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단정형이 아니라 ‘체르노빌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수렴형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고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체르노빌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이헌석 ecenter@eco-center.org
〈청년환경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