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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환경운동이 뛰어넘을 벽은…

이런걸 일석이조라고 하나보다..

원래 인터뷰를 할 때 2개의 글을 쓰겠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하나의 인터뷰를 갖고 2개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인터뷰한지는 한참되었는데 이글은 이제서야 본다...^^


http://www.eco.or.kr/2006_web/bbs/board.php?bo_table=wooridaum&wr_id=485

환경운동이 뛰어넘을 벽은…
청년환경센터 이헌석 대표를 만나다

강서희 heegingi@naver.com

기억도 나지 않는 몇 해 전 기억들

환경정의를 처음 만난 것은 길에서였다. 안티패스트푸드 운동을 하는 환경정의는 환경단체 치고는 참 신기한 존재였다. 열심히 캠페인 하는 모습이 좋아서 적은 금액이지만 금세 회원이 됐다. 매번 캠페인에서 만나던 한 어머니 회원의 권유이기도 했다. 흔쾌히 승낙했던 기억이 있다. 2004년의 일이다.
그 때 당시 나는 다른 환경단체인 ‘청년환경센터’ 회원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랫동안 인연을 가지고 있었고, 단체 상근자들과 친했으며, 그 단체가 하는 행사에 종종 찾아가기도 해서 난 그 단체의 회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기억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상근자들에게 원망의 소리를 퍼부었던 기억이 있다. “뭐에요. 왜 나한테 회원하라고 이야기도 안 해요?” 2006년의 일이다.
청년환경센터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여름, 영광에서였다. 반핵투쟁단(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이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는)이 영광을 시작으로 핵(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청년환경센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아마 그 반핵투쟁단은 청년환경센터와 대학의 환경동아리가 기획했던 것 같다.
그런데 청년환경센터 이헌석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 해였는지, 그 이듬해였는지, 어디서 캠페인을 하면서 였는지, 아니면 내가 처음으로 기자로 일하면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최소한 4년은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 확실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청년환경센터를 먼저 알게 된 건지 환경정의를 먼저 알게 된 건지 모두 다 헷갈린다. 하지만 이게 무엇 중요하랴.

긴 만남. 그러나 아는 것은 없다

만난 시간에 비해 이헌석 대표와 청년환경센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가 왜 환경운동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왜 청년환경센터는 반핵운동을 중심적으로 하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를 여기서 시작할까 한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리던 8월 중순, 이헌석 대표를 청년환경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학 때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생 때, 과학기술자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과학기술자운동이 90년대 초반에 폭삭 망했어요. 그러다가 96년 대학에서 처음으로 환경현장활동으로 준비하면서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일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환경운동에 입문했어요. 핵, 기후, 에너지 등을 공부했고, 98년에는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에서 반상근을 하면서 주로 반핵운동을 결합했는데, 벌써 핵 문제만 10년째 다루고 있네요.”
청년환경센터는 99년 준비위원회를 시작으로 2000년에 출범한 단체다. 청년환경센터는 ‘자본에 짓밟히는 생명을 사수하라’를 모토로 하여 반자본 환경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전형을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젊은 단체다. 환경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사회전반의 구조적 변화-실업, 빈곤, 부정부패 등의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체제 변화-를 실현해야 하며, 정부와 기업까지도 파트너로 삼는 운동의 방식에 대해 반대해 정부와 기업의 후원은 원천적으로 받지 않는 등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활동을 펼쳐내려는 단체다.
이헌석 대표는 “현재 활동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환경운동이 뛰어넘을 벽은 보이는데, 조건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2005년 방사선폐기물처리장 싸움 참패 이후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환경운동이 처한 현실

“지금의 환경운동의 처해있는 장벽이 있어요. 날씨가 바뀌는 것이 보이지만 환경단체들이 시민들에게 ‘환경단체에 가입하세요. 후원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답이 아니지 않습니까? 90년대 초보다 시민들이 환경문제를 느끼는 감도는 높아졌지만 이것을 개인적인 문제로 소급하는 경우가 많아요. 웰빙식품을 찾고 자연친화적 건축을 하길 바라요. 그러나 이건 개인적 시야일 뿐이고 국가전체로 봤을 때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반면 지역에서는 지역개발의 열을 올린다. 경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말에 이명박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면서 자연환경파괴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환경운동의 위기는 전체 진보운동 진영의 위기일 수도 있지만, 사회전체의 병폐일지도 모른다.
“현장에 있어보면 사회전체가 보수화되는 모습이 개발주의로 왜곡되고 있습니다. 80년대에는 환경문제에 무관심한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싸웠다면, 지금 환경운동은 지역주의에 물든 주민들과 충돌에는 관심 없는 시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헤매고 있어요. 새만금이나 천성산에 가면 지역주민들이 ‘우리 밥줄을 끊으려고 하냐’고 말해요. 송전탑, 소각장, 납골당 등 개발사업이 있다며 먼저 열락해오는 지역주민들 대부분은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환경단체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여러 중의적인 의미가 섞여있다. 기업이 먼저 환경을 이야기하고 친환경적인 공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환경단체가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 걸까. 이전에 ‘핵발전소 반대’라고 하면 이견이 있어도 거의 단일화되었지만, 지금은 정보도 많고 정책수립에 참여하는 방법도 다양해지면서, 단순하게 결정하기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많다. 공공부분 민영화 논의처럼 환경단체 간 합의되지 않은 이슈들이 많아지고 있다. 환경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물, 전력의 민영화를 제시한 환경단체도 있다. 이헌석 대표는 “이제는 큰 단체의 품 안에서 어떤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 각각의 사항의 입장과 원칙을 정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의 위기, 무엇을 할 것인가

청년환경센터는 요즘 사람들을 모아 ‘에너지대학 2007 여름학기’라는 강좌를 하고 있다. 핵무기와 핵발전의 역사, 원리를 배우고, 핵무기와 국제관계를 살펴보며 핵이 한국전력정책, 환경문제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공부하고 있다.
“환경단체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이제 환경운동에 전문화된 형태의 대중이 모여야 해요. 해당지역에 매몰되어 피해당사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나, 어떤 환경문제가 나왔을 때 누가 이 문제를 다루고 누가 글을 쓸 것인지 인적기반이 없으면 그 운동은 불가능해요.”
또한 풀뿌리 환경운동을 구상하고 있다. 한국사람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운동이 침체기일 때 힘들어 하는데 개인의 관심을 모아내는 꾸준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환경운동은 환경사안이 있는 지역주민의 운동이거나, 개인이 관심 있어 참여하거나, 단체활동가로서 하는 경우가 전부”라며 “‘새만금을 사랑하는 강릉시 시민모임’과 같은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운동이 위기라는데, 그렇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걸까. 이헌석 대표가 말한대로라면 ‘환경운동단체에 전문화된 대중이 모여야 한다’. 그리고 운동에는 전문화된 대중이 모여야 한다는 것에 나는 십분 동감한다.

청년환경센터가 본 환경정의

올해 환경정의가 15주년이 되었다. 청년환경센터와 환경정의가 같은 사안을 두고 함께 협력하기 보다는 환경단체의 공동대응이 있을 때 주로 마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헌석 대표는 ‘환경정의는 색깔이 있는 환경단체’라고 말했다.
“환경정의는 한미FTA때 몇 번 만났어요. 에너지 부분에서는 핵보다 주로 기후변화를 하니까 만날 기회가 없죠. 청년환경센터는 핵에너지 문제를 다루니까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가에너지시민포럼에서 만난 적도 있네요.”
백화점식 운동을 해오던 것과 달리 환경정의는 난개발, 기후변화 등을 통해 정체성을 부각한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녹색연합은 생태계와 미군 문제 외의 영역을 축소했다.) 하지만 그는 “정책중심이어서 시민접촉이 부족한 감이 있고, 주장이 레디컬할 때가 있다. 먹거리 운동에 대해 캠페인은 잘 하지만 정부요구사항이 약하고 핵심이 부각이 잘 안된다.”고 말했다. 반면 “경인운하 등 난개발 사업이 특히 부각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서희 | 올해 5월까지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에서 기자일을 했다. 지금도 종종 프로메테우스에 글을 쓰고 있다. 여름내내 충북괴산에 있다가 8월부터 박종철출판사에서 북디자이너 겸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