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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이제 시작된, 그러나 앞으로 계속될 논쟁 - 핵발전소 수명연장

<국회보 2007년 9월호 원고>


이제 시작된, 그러나 앞으로 계속될 논쟁 - 핵발전소 수명연장

이헌석(청년환경센터 대표)

계속운전과 수명연장. 사용하는 용어에서부터 다른 출발

원자력발전소와 핵발전소.

같은 대상을 지칭하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용하는 용어와 환경단체가 사용하는 용어는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다. 이 차이를 단지 Nuclear Power Plant 라는 단어를 번역하면서 생긴 문제라거나 법률용어와 일상어의 차이라고만 하기엔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쟁은 너무나 뜨거웠다. “핵폭탄, 핵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환경운동진영이 “핵”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비판과 발전소의 위험성을 감추기 위해 “원자력”이라는 우회적 용어를 쓴다는 논란은 30년 설계 수명을 마친 고리 1호기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계속운전과 수명연장.

고리 1호기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하기 이전에는 정부의 공식 표현에서 조차 수명 연장(Life Extension)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나 “연장”이란 단어가 갖고 있은 어감 등을 고려 계속운전(Continued Operation)으로 바뀐 이 표현은 고리 1호기를 둘러싼 문제가 첫단추부터 얼마나 어렵게 끼워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안전성과 정보공개를 둘러싼 논란

핵발전소에 있어 가장 큰 쟁점은 무엇보다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다.

사고의 규모가 다른 사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한 발전소의 경우에는 부품의 노후화 정도 등이 확인되지 않아 인명피해로 이어진 사고 사례 등이 일본 등에서 발견되었기에 더욱 세밀한 점검과 검증이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문제는 검증을 진행하고 있는 과학기술부와 발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외에 누구도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 없다. 그동안 방사성환경영향평가서, 주요기기안전성평가서 등 안전성에 대한 기본 자료를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요구했으나 발전사업자의 영업상 비밀이라거나 현재 검토 중이라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신규발전소 건설을 할 때 동일한 정보를 공개하고 공청회 등을 하는 것을 생각할 때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지역주민을 비롯한 국민의 알권리를 철저히 봉쇄하는 일이다.

현재 상태에서는 해당지역주민,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수명연장 결정이 난 이후 - 사후적으로 보완된 자료만을 열람할 수 있다. 기존 다른 핵발전소 관련 사안에서 사후정보공개 역시 원활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현재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을 둘러싼 문제는 정부관리와 사업자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미흡한 수명연장 절차들

고리 1호기의 설계수명 30년은 발전소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 당시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5년 9월까지 수명연장에 대한 법률을 정비하지 않고 있다가 급하게 원자력법을 정비하게 된다. 그 결과 여타의 핵발전소는 수명연장 신청을 위해 2년~5년 전에 신청서와 함께 평가보고서를 제출하게 지정했으나 고리 1호기에 대해서만 예외를 두어 1년전에 수명연장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법률상의 허점은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이야기한 수명연장에 대한 정보공개, 공청회 등은 신규발전소 건설, 핵폐기장 건설 등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의무사항이지만, 사실상 발전소를 신규 건설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거두는 수명연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사항이다.

또한 우리나라 발전소 건설계획을 총체적으로 수립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안전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수명연장”을 결정해 버리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그동안 산업자원부는 설계수명이 다한 발전소에 대해 처음에는 “폐기”를 전제로 발전량 등을 조정해 왔으나 기간이 지남에 따라 “수명연장”을 전제로 발전량 등을 산정해 왔다. 이는 실제로 안전성 검토 등으로 발전소 폐기가 될 경우 전력수급량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핵발전소처럼 규모가 큰 발전소의 경우, “폐기”를 전제로 하거나 “유보”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전력수급계획을 잡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동안 정부는 “수명연장”을 내부적으로 결정해 놓고 안전성과 설비교체 등을 해 온 것이다. 핵발전소를 둘러싼 이러한 일들은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전력정책이 수립-집행되는 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관행을 막기 위해 수명연장을 비롯한 전력정책 전반에 대한 정보공개와 시민사회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핵발전소들도 모두 이렇게 진행할 것인가?

고리 1호기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리고 정부는 12월말까지 수명연장의 결론을 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종결되지 않은 논쟁 이후 결론. 그리고 이후 같은 형식의 다른 사업 진행. 이는 정부가 핵발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계속 반복해 온 일이다. 20년을 끌어온 핵폐기장 논란이 좋은 예이며, 이제 수명연장을 똑같은 방식으로 끌고 가고 있다.

2013년 설계수명이 끝나는 월성1호기 등 이후 설계수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발전소는 줄을 잇고 있다. 그 때마다 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가며, 안전성 논란을 일으키며 보완되지 않은 법-제도로 예외조항을 둘 것인가? 아니면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쟁을 제대로 진행해서 어떤 에너지 체제를 만들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의 길 앞에 우리는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