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 안되는 취미 중에 옛날 사진보기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사진 보기를 좋아하는데, 글로는 보이지 않는 세밀한 부분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리 밑에서 굴러다니는 각종 잡동사니라던가, 사진의 곳곳에서 보이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물)은 사진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오늘 다른 일때문에 간 도서관에서 "사진으로 보는 옛 한국 - 은자의 나라"(YBM Sisa 발행)을 보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피의 사진을 모은 것인데, 100년전 외국인의 시각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진을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불쾌한 아이의 모습과 무표정한 어른의 모습(다소 못 마땅하기는 어른도 마찬가지인듯하다.) 서로의 행색을 보아 나이때문이라기 보다는 신분의 차이 (아무리 봐도 아이는 중인계급인데, 어른은 그 이하인 듯하다. 제대로 된 의관을 갖춘 중인 계급의 아이와 하인 정도 일 듯하다.)때문인 것같기는 하지만, 외국인의 눈 뿐만 아니라 100년이 지난 한국인의 눈에도 재미있는 표정이다.
뒷배경으로 나오는 산야와 오두막은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이기에 더욱 생경하기도 하다.(요즘 산을 찍으면 거의 반드시 송전탑이나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이런 풍경은 어디서 찍을 수 있겠는가?)
금강산을 설명한 이 구절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산'에 대한 설명은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여름이면 홍수가 나고 일상시에도 민둥산이 된 산의 모습이다. 사진으로 보아도 차라리 지금이 더 울창하지 '옛날이 더 울창했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이다. 당시가 일제초기였음을 고려하고 이때 산림벌채가 극한에 치달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금수강산'이란 말은 최소 100년 이전에 만들어진 말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금강산은 달랐다. 오죽했으면 위와 같은 표현을 했겠는가. (지금도 설악산과 북한산은 봄이면 줄을 서서 올라가니 지금도 변한 것이 없는 대목이다.)
'백의민족'이 삼국시대부터 나온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외국인이 그냥 한 말일 수 있겠으나, 혼자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통역이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또한 실제 옷가지가 넉넉하지 않은 백성들은 비슷한 심정으로 흰옷을 입지 않았을까? 애초 그 이유야 어찌했든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민중들의 삶은 그 이유보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사진 보기를 좋아하는데, 글로는 보이지 않는 세밀한 부분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리 밑에서 굴러다니는 각종 잡동사니라던가, 사진의 곳곳에서 보이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물)은 사진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오늘 다른 일때문에 간 도서관에서 "사진으로 보는 옛 한국 - 은자의 나라"(YBM Sisa 발행)을 보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피의 사진을 모은 것인데, 100년전 외국인의 시각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전략 ..동행한 한국인에게 '저 꼬마가 정말 결혼했나?'하고 물었다.'누구요?' 저 사람말말이요?'하고 그는 그 아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아이는 겨우 11살이었고, 10살짜리 아내가 있다고 했다. 이 '어른' 옆에는 댕기머리의 47살 먹은 어른이 서 있었다. 그는 장가를 안들었기 때문에 상투를 틀수도, 갓을 쓸 수도 없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아이'취급을 받는다. 두 사람은 우리의 청에 못 이겨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둘이 함께 세운데 대해 그 '꼬마 어른'은 몹시 불쾌한 모습이었다..(1919년 7월 내셔널지오그래피)
사진을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불쾌한 아이의 모습과 무표정한 어른의 모습(다소 못 마땅하기는 어른도 마찬가지인듯하다.) 서로의 행색을 보아 나이때문이라기 보다는 신분의 차이 (아무리 봐도 아이는 중인계급인데, 어른은 그 이하인 듯하다. 제대로 된 의관을 갖춘 중인 계급의 아이와 하인 정도 일 듯하다.)때문인 것같기는 하지만, 외국인의 눈 뿐만 아니라 100년이 지난 한국인의 눈에도 재미있는 표정이다.
뒷배경으로 나오는 산야와 오두막은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이기에 더욱 생경하기도 하다.(요즘 산을 찍으면 거의 반드시 송전탑이나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이런 풍경은 어디서 찍을 수 있겠는가?)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외지사람을 유혹하고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 지구상 어느 민족도 한국인들처럼 미친듯이 구경을 좋아하고 놀이를 즐기며, 자연 경관의 매력에 심취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수십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산을 찾으며 산에 올라 경치를 즐겼고 정상에 오르면 유쾌한 놀이로 등정을 자축한다.(1924.10. 내셔널지오그래피)
금강산을 설명한 이 구절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산'에 대한 설명은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여름이면 홍수가 나고 일상시에도 민둥산이 된 산의 모습이다. 사진으로 보아도 차라리 지금이 더 울창하지 '옛날이 더 울창했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이다. 당시가 일제초기였음을 고려하고 이때 산림벌채가 극한에 치달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금수강산'이란 말은 최소 100년 이전에 만들어진 말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금강산은 달랐다. 오죽했으면 위와 같은 표현을 했겠는가. (지금도 설악산과 북한산은 봄이면 줄을 서서 올라가니 지금도 변한 것이 없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흰색은 애도의 상징이다. 추모기간은 3년이며 황실사람이 죽으면 모든 백성이 흰옷을 입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사람들이 평상시 흰옷을 입어온 연유를 설명해 준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가족이나 왕족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항상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1919년 내셔널지오그래피)
'백의민족'이 삼국시대부터 나온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외국인이 그냥 한 말일 수 있겠으나, 혼자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통역이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또한 실제 옷가지가 넉넉하지 않은 백성들은 비슷한 심정으로 흰옷을 입지 않았을까? 애초 그 이유야 어찌했든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민중들의 삶은 그 이유보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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