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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잡기장

잡종견 똘이를 추모함.



처음 이 녀석을 본 건 1989년이었다.
그 이전부터 키우던 '미미'가 4~5마리의 새끼를 놓았다.
'미미'는 그 이전에도 몇 차례 새끼를 놓았는데, 이게 두세번째 되었던 것 같다. 이 녀석은 다른 놈들에 비해 가장 약한 녀석이었다.
가장 늦게 태어나기도 했지만, 또래의 새끼들 가운데 몸이 약하다보니 당연히 먹는거나 행동하는 것에서 형제들사이에서 밀리는 놈이었다.
4~5마리의 개를 키우기에 적절치 않았기에 이 녀석은 우리가 키우기로 하고, 이름을 '똘이'라고 지었다. 똘똘하라는 뜻도 있었지만, 개 이름이 그런 것처럼 별뜻없이 지은 이름이었다. 똘이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왕따였기 때문에 형제들사이에서 밀리다가 당시에 지하실에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허리가 굽은 상태'였고, 그런 경력을 알고 있기에 '좀 덜 떠러지는' 강아지에게 역설적으로 '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릴때의 사고(!)로 이녀석은 항상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어서 다녔기에 동네 개들 사이에서도 왕따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이 녀석이 막 동네를 돌아다닐때만 해도 동네에 잡종견이 많았다. 흔히 이야기하는 똥개는 큰 개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녀석은 집을 대신해서 라면박스를 쓸정도로 - 따라서 라면박스에 누우면 충분히 잘 수 있다. 작은 녀석이다. 당연히 순종은 아니며, 애완용이기는 하지만 '개란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으로 집에는 못들어오게 하며, 집 마당에 사는 이런 개들이 그때는 많았다. 똘이는 그렇게 살아가는 개 중의 하나 였다.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지만, 집에는 못 들어오도록 교육되었고 집을 지키기 보다는 '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목소리만 큰 개였다.

잡종견이라는 것은 이 녀석의 몸을 통해서도 잘 들어난다. 전체적으로 흰색을 띠며 등을 중심으로 긴털과 짧은 털이 함께 나 있는 어미와 달리 똘이는 전형적인 바둑이 모습이며, 털의 길이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머리쪽은 짧고, 왼쪽 등은 길고, 왼쪽 등 가운데 꼬리쪽은 중간 정도, 오른쪽은 짧은 이런 식이었다. 하나의 개체에서 이렇게 다양한 형질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똑같은 잡종이었던 어미와 달리 똘이는 둔함을 갖고 태어난 놈이다. 어미 '미미'의 경우에는 평소에서 목에 달고 있던 목테두리를 자기 스스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의 지능과 실력을 갖고 있었고, 한번은 며칠동안 없어졌서 걱정을 했더니 노끈으로 되어 있는 끈을 끊고 탈출(!)을 감행한 적도 있었다. 누군가 잡아가두었던 것을 끊어내고 탈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녀석은 정반대이다. 어미로부터 탈출의 기법을 전수받지도 못하고, 매번 어미 뒤만 졸졸 쫒아다니는 '마마보이'로 컸다. 어미가 발정이나 놀러다니더라도 항상 그 뒤만 쫒아다니는 다소 불안정하며 어리숙한 개였던 것이다.

어미 '미미'와 함께 동네를 주름잡던 '똘이'는 어미가 죽은 다음부터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앞마당이 있던 집이 증축을 해서 마당이 없는 형태로 바뀌었고, 뛰어 다니던 동네에는 차들이 많아서 간혹 차때문에 놀라거나 동네사람들에게 차이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막사는 개들은 애완용에 비해 '치유력' 뛰어나다. 누군가에게 차여서 몸에 신발자국이 나있는 상태에서 절룩거리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신나게 돌아다니곤 했다.

이러던 '똘이'가 어제 아침 죽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죽임을 당했다.' 몇년전부터 백내장이 심하게 와서 눈이 보이지 않고 이빨은 다 빠졌으며, 냄새도 맞지 못하던 '똘이'였는데, 몇 달전부터는 먹지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근래 며칠동안은 밤에 잠을 못잘 정도로 앓는 소리가 너무 커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갖더니 '가망'이 없단다. 사실 몇달전부터 안락사를 고민하고 있던 터라 더이상 고통스럽게 살아있는 것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편치 못해서 결국 안락사를 결정하신 모양이다.

개 수명을 생각할 때, 19년을 살았으니 천수를 누린 셈이다. 어머니는 항상 똘이를 보고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이야기하시곤 했다. 불교를 믿지는 않으시지만, 개로 태어나서 고생하지 말고 사람으로 태어나 편하게 살라는 말씀이실 것이다. 윤회가 정말 존재한다면, 다음 생에는 '왕따'와 '서러움'당하지 말고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진심으로 잡종견 '똘이'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