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 우리집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모두 보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석간이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조선일보가 오후에는 동아일보가 배달되는 식이었다.
동아일보의 코너 중에는 기억이 나는 코너가 없는데, 조선일보는 기억나는 코너나 만화 등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이규태코너였다. 방대한 한국학 지식, 동양과 서양을 오고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이 코너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었고, 무엇인가를 공부하고 익히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전범이기도 했다.
국민학교때부터 신문을 - 그것도 매일 - 읽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바로 이규태코너였다. 세로쓰기에 한자가 1/3쯤 섞인 신문을 말이다.(그래서 아직도 새로쓰기로 된 책을 읽는 데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이규태 코너의 저자 이규태씨가 어제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이규태 코너와 멀어지기 시작해서 이후로는 가끔 이규태코너를 접하곤 했는데, 최근까지 연재된 이규태코너는 예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신문 코너의 정석이다. 자신만의 코너를 만들기 위해 1만5천여권의 책과 10년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한 독자적인 인덱스법을 갖고 있는 이규태씨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과 존경을 보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동아일보의 코너 중에는 기억이 나는 코너가 없는데, 조선일보는 기억나는 코너나 만화 등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이규태코너였다. 방대한 한국학 지식, 동양과 서양을 오고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이 코너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었고, 무엇인가를 공부하고 익히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전범이기도 했다.
국민학교때부터 신문을 - 그것도 매일 - 읽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바로 이규태코너였다. 세로쓰기에 한자가 1/3쯤 섞인 신문을 말이다.(그래서 아직도 새로쓰기로 된 책을 읽는 데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이규태 코너의 저자 이규태씨가 어제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이규태 코너와 멀어지기 시작해서 이후로는 가끔 이규태코너를 접하곤 했는데, 최근까지 연재된 이규태코너는 예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신문 코너의 정석이다. 자신만의 코너를 만들기 위해 1만5천여권의 책과 10년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한 독자적인 인덱스법을 갖고 있는 이규태씨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과 존경을 보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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