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고

한국환경운동사 8 - 돌이켜 보는 80-90년대 환경운동

 

<한국환경운동사 기획연재>

1. 최초의 반공해투쟁 - 온산주민투쟁 (`84-`85)

2. 상봉동 연탄공장 인근 주민 진폐증 사건

3. 계속되는 방사능 피폭과 핵발전소 11,12호기 건설반대투쟁(`88-`89)

4.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투쟁(`90)

5. 대구 페놀 사건(`91)

6.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94-`95)

7. 동강 댐 건설 반대운동(`98-`99)

8. 돌이켜 보는 80-90년대 환경운동


돌이켜 보는 80-90년대 환경운동


청년환경센터(준) 대표 이헌석(LEEHS1@chollian.net)


그간 7차례에 걸쳐 한국환경운동사를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20여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뀌기도 하고, 운동진영의 변화를 겪기도 했으며, 가장 현실적으로는 환경사안이 해결(혹은 백지화)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하나의 개별 사안만을 놓고 볼 때 동떨어진 사안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매년 벌어진 각 사안들은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 맞춰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이번 마지막 글에서는 80년대, 90년대 환경운동의 흐름을 정리하고 21세기 환경운동의 전망을 간단히 해보도록 한다.


80년대 환경운동 - 민중운동과 함께, 그러나 제대로 융합하지 못했던 환경운동

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창립으로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그 출발부터 외국의 환경운동과 달랐다. 지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계몽주의적?보수주의적 환경운동이 초창기 서구 환경운동의 주된 흐름이었다면, 한국에는 환경문제로 인해 억압받고 피박받는 민중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흐름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단 폐수에 오염된 물고기와 해조류를 먹고 고통을 호소했던 온산지역주민들, 연탄공장 옆에 산다는 이유로 진폐증에 걸린 상봉동 주민들, 핵발전소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무뇌아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 이들 모두는 조국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이유로 희생을 강요받고 생존권을 위협받았던 민중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민중운동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민중운동의 분위기는 환경운동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다. “반파쇼 투쟁”을 중심으로 한 환원론적 사고방식, 부문운동에 몰이해와 정서적 문제 등으로 인해 환경운동은 민중운동과 융합하지 못했고, 이는 변혁적 관점에 입각한 환경운동이 태동되지 못하고 사안에만 치중하고 대세에 휩쓸리는 한계적 운동으로 환경운동이 머무르는데 큰 이유로 작용하게 된다.


90년대 환경운동 - 시민운동으로의 안착화

이러던 중 80년대말 90년대 초에 불어닥친 동구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범은 남한 운동진영내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다. 이는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전체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89년 경실련을 시작으로 93년 환경운동연합, 94년 참여연대의 탄생은 한국에서도 본격적 의미의 시민운동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피해자 중심의 생존권 투쟁에서 중산층 중심의 자연보존운동으로, 정치투쟁?반정부투쟁에서 언론중심?대안중심의 제도 개선운동으로, 반자본투쟁에서 기업과 함께하는 환경운동으로, 환경운동은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물론 90년대 중반까지 80년대 민중운동의 분위기들이 전달되어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과 같은 대규모적 지역주민운동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9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이러한 흐름들은 시민운동의 전형적인 흐름들로 안착화된다. 영월 동강댐 건설반대운동, 대만핵폐기물이송반대운동 등 대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운동들이 대규모적으로 벌어지는 것도 이와 때를 같이한다. 이와 같은 시민환경운동은 80년대 이후 민중운동적 성향의 환경운동세력들이 자신의 활로를 찾지 못하고 소멸함에 따라 지금 현재에는 거의 유일한 환경운동의 경향으로 한국사회에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환경운동,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난 지금, 환경운동은 시민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부분으로 자리잡아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80년대 민중운동의 성격들이 90년대까지 일부 이어져왔기에 거대한 “사상의 용광로”로서 환경운동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아직도 그대로 존재한다. 즉 “기업과 함께 하는 환경운동”과 “반자본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이 하나의 조직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순, 개인적으로는 반정부의 입장이 분명하지만 조직적으로는 정부와 협조하는 모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기적 모습은 이제 얼마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의 정치적 색깔(이념)을 더욱 분명히 들어내고 정치영역으로까지 자신의 운동을 확대하지 않을 경우 더욱 풍부한 운동을 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올해 총선시민연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시민운동의 흐름에서 알 수 있듯, 더 이상 “환경운동(혹은 시민운동) = 순수한 운동 = 비정치적 운동”이라는 등식은 시민운동 주체들은 물론이고 범국민적으로 믿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2000년대 환경운동은 더욱 많은 이념적?정치적 분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은 “환경”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만 묶여 있었던 각기 다른 생각들이 서로 분화되고 확장되면서 따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운동의 이념적 분화 발전 경향들은 2000년대 진보정당 출현과 맞물려 본격적 의미의 “이념이 있는” 환경운동의 출현과 사상적 배경이 다른 여러 개의 환경단체들의 출현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