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아래 글에 나오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내용은 바뀌었음을 알립니다.
- 지은이 씀-
<한국환경운동사 기획연재> 1. 최초의 반공해투쟁 - 온산주민투쟁 (`84-`85) 2. 상봉동 연탄공장 인근 주민 진폐증 사건 3. 계속되는 방사능 피폭과 핵발전소 11,12호기 건설반대투쟁(`88-`89) 4.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투쟁(`90) 5. 대구 페놀 사건(`91) 6.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94-`95) 7. 동강 댐 건설 반대운동(`98-`99) 8. 돌이켜 보는 80-90년대 환경운동 |
동강은 흘러야 한다.
- 동강 댐 건설 반대 운동(`98-`99) -
청년환경센터(준) 대표 이헌석(LEEHS1@chollian.net)
90년대 후반 환경운동사를 정리하며 빼 놓을 수 없는 사안이 바로 영월 동강댐 건설반대운동이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범국민적인 호응과 폭넓은 반대운동, 그리고 대통령의 백지화 지시 등은 영월 동강댐 반대운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벌어졌으며, 성과를 가져다 줬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영월 동강 댐 건설반대운동은 그 사안이 컸던 만큼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강력한 언론의 위력
90년대 들어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있어 언론은 빼 놓을 수 없는 수단이 되었다.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다른 민중운동과 달리 이들 운동에서 언론을 통한 선전과 사안의 진행은 매우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언론과 환경운동의 이러한 관계는 영월 동강댐 건설반대운동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처음 동강댐 건설반대운동이 진행되던 97년, 동강은 이름 없는 작은 강에 불과했다. 그러나 굽이굽이 흐르는 사행천(蛇行川)의 아름다움과 온갖가지 천연기념물, 석회암 동굴의 아름다움 등이 TV와 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양상이 180도 바뀐다. 인간의 손이 함부로 닿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은 온 국민 - 특히 도시생활에 찌들어 있는 많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번도 동강에 가 본적 없지만, TV 다큐멘타리와 일간지, 주간지 등을 통해 접한 많은 이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댐과 함께 수몰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전국적 매체망을 가지고 있는 언론의 위력은 이후 벌어진 반대운동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6개월만에 2000여명의 동강지킴이가 조직되었고, 이와 함께 만들어진 성금 4천9백만원은 시민운동사 최대의 기록이었고(이 기록은 올해 총선시민연대에서 깨졌다.), 이에 고무받은 각 방송국에서는 너도 나도 방송물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동강은 TV와 사진에 담기에 너무나 좋은 소재였던 것이다.
아름다움 알리기 운동의 한계와 재건설 논란
하지만, 아름다움 알리기를 중심으로 벌어진 동강댐 반대운동은 바로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처음에는 동강을 알리기 위해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권장되었던 “래프팅(rafting - 계곡의 급류에서 고무보트를 타는 레포츠)”이 봄-여름을 맞아 기업체 사은품이나 상품으로까지 내걸릴 정도로 대중화되어 제2의 환경파괴를 불러왔고, 아무도 찾지 않아 천혜의 자연 속에 조용히 살던 희귀 조류들은 래프팅하러온 관광객과 피서객에 밀려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곳 = 놀기 좋은 곳”이라는 저급한 국민 인식 속에서 아름다움만을 알리는 작업은 운동을 속류(俗流)화시키고 결국에는 환경파괴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결국 “댐 건설되기도 전에 동강이 동강나겠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래프팅 금지와 휴식년제 도입 등으로 사태를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거대한 해프닝을 연출했다.
또한 이러한 운동의 한계는 이후 진행된 동강댐 건설반대운동에서도 잘 들어 난다. “자연의 보존”과 “개발의 논리”는 더 이상 “왜 자연파괴를 무릅쓰고 시급하지도 않은 댐을 건설하려고 할까?”와 같은 본질적 문제에 대해 답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지시마저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 집단화되어 버린 댐 찬성론자들의 본질을 폭로하지 못하고, “동강 댐이 안전한가?”와 같은 과학기술 논쟁에 휩싸이거나 “범국민적으로 물을 절약합시다.”와 같은 캠페인을 환경부와 함께 펼치는 방향으로 우회할 뿐이다. 이 한계를 증명이나 하듯, 4.13 총선이 끝나자 마자 정부 일각에서는 “홍수댐의 필요성”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두 번씩이나 확인했던 사안을 다시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보편타당한 논리만을 가지고는 “개발”과 “이윤”을 둘러싼 엄청난 장벽을 넘을 수 없을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90년대 대표적 시민환경운동 -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
영월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아직 이 운동을 평가하고 의미를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이 운동이 90년대 시민환경운동을 특징짓는 대표적 사업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도시 생활에 찌들어 있지만 삶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도시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운동, 필요에 따라서는 정부(동강댐 사안에서는 환경부)와도 함께 협력할 수 있는 포괄적 전선 구축, 언론을 중심으로 한 선전?홍보 전술 등 동강댐 건설반대운동이 가지고 있는 90년대 시민운동적 특징은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하나씩 밟아왔던 시민환경운동의 특징을 하나로 집대성 해놓은 듯한 인상이다. 80년대 민중운동적 성향에서 90년대 초반의 과도기적 상황을 거쳐 90년대 후반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에서 비로소 안착화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월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은 단지 “댐건설을 백지화시켰는가, 아닌가의 부분”보다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의미들을 더욱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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