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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환경/생태

개펄체험에 ‘개펄’ 죽어간다


개펄체험에 ‘개펄’ 죽어간다




≫ 25일 오전 강화도 남쪽의 한 갯벌에서 갯벌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 갯벌을 운동장 삼아 축구시합을 하고 있다.

머드팩한다고 뒹굴고 축구한다고 마구 뛰고
민챙이들이 짓밟혀 펄 속에 파묻히고 있다
사람들 행렬 이어질수록 바닥은 점점 딱딱해지고
생명체 이동·산소공급 안돼 서서히 숨이 막혀간다

갯벌 바닥에 숭숭 뚫려 있는 작은 구멍에서 조그만 안테나처럼 생긴 것이 삐죽 올라온다. 잠시 주위를 휘 둘러보는 듯하더니 무엇인가 톡 튀어나온다. 칠게다. 유난히 겁이 많은 놈은 작은 인기척에도 화들짝 놀라 쪼르르 다시 구멍 속으로 숨는다.

그 구멍을 짓뭉개기라도 할까 발 밑을 조심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갯벌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막 바닷불이 빠져나간 조용한 갯벌. 자세를 낮추고 살그머니 다가가 귀를 귀울이면 들리는 소리. “사각사각, 꼬르륵 꼬륵, 뽀글뽀글.” 정확히 옮기기 어려운 이 소리를 바닷가 사람들은 “갯벌이 끓는 소리”라고 말한다.

갯벌을 끓게 만드는 것은 바닷물이 빠져나가자 부산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다양한 생물들이다. 갯벌 끊는 소리는 그래서 건강한 갯벌일수록 크게 들린다. 이 소리가 안 나는 갯벌은 병들거나 죽은 갯벌인 셈이다. 갯벌의 생명체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물론 수십 수백만평의 갯벌을 한꺼번에 흙으로 덮어버리는 간척이다. 하지만 갯벌에 대한 무지와 생명존중 의식 없이 갯벌체험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무분별하게 펼쳐지는 갯벌 나들이 또한 갯벌을 병들게 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25일 오전 11시께 강화도 남쪽의 한 갯벌. 갯벌체험을 온 한 무리의 어른과 아이들의 축구 시합이 한창이었다. 공을 좇는 발걸음들에 갯벌 바닥은 금세 마치 모내기를 하려고 막 써레질을 해놓은 논처럼 변했다. 눈치 빠른 작은 게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갯벌 표면을 느릿느릿 배밀이해 다니는 고둥의 일종인 민챙이들만이 어디로 피하지 못한 채 어지러운 발걸음에 짓밟혀 펄 속 깊이 파묻히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환성과 웃음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 강화도에 갯벌 체험을 온 한 어린이가 갯벌에서 잡아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다니던 작은 게들을 자랑스레 보여주고 있다.

용케 짓밟히지 않은 생명들은 인간의 채취본능의 희생물이나 유희의 수단이 된다. “몰라요. 그냥 재미로 잡아요.” 주변에서 다리가 떨어진 게를 잡아 비닐봉지에 넣고 있던 한 어린이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교회 친구들과 이번에 두 번째 갯벌체험을 나왔다는 이 어린이에게 “갯벌체험이 뭐하는 것이냐”고 다시 물었다. 어린이는 ‘어른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갯벌에서 게나 조개 잡고 노는 것”이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다른 갯벌을 보기 위해 승용차를 타러 갔을 때 노변 주차장 옆 옹벽 위에 누군가 버린 듯한 종이컵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 본 컵 속에는 통통한 밤게 두 마리가 거품을 문채 죽어 있었다. 유희의 수단으로서의 목적을 다한 생명들이 분명했다.

인천시 해양탐구학습장으로 사용된 지 오래된 강화도 서편의 한 갯벌도 예상대로였고, 2000년 말 영종대교 완공으로 나들이 객이 급증한 남쪽의 용유도 덕교리 갯벌도 마찬가지였다. 공놀이를 하거나 머드팩을 한다고 바닥에서 뒹구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바닥에서 움직이는 생물들은 예의 민챙이를 제외하고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밖에 시화호 바깥과 오이도·대부도·제부도, 충남 서천의 비인만 등 갯벌체험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대부분의 갯벌들이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 김경원 환경운동연합 습지보전팀장의 설명이었다.

김 팀장은 “사람들이 갯벌에 들어가서 마구 짓밟고 다니는 일은 육지로 치면 야생화들이 만발한 꽃밭이나,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을 마구 짓밟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갯벌이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갖가지 생명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민들이 갯벌을 드나들 때 꼭 다니는 길로만 다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갯벌체험에 나선 많은 이들에게 갯벌은 그저 놀이터일 뿐이다.

갯벌에 사람이 들어가 마구 짓밟는 것은 갯벌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람들이 갯벌에 들어가면 주변에 있던 게와 같은 생물들은 모두 구멍 속에 숨는다. 결국 바닷물이 밀려나간 시간 동안 한참 먹이를 먹고 활동을 해야 할 생물들의 건강한 생존에 지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들이 들어가 있는 구멍을 실수로라도 밟아 메워버리는 것은 먹이를 먹지 못해 기력이 떨어진 생물들에게는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렇게 일단 생태계 먹이사슬의 순환고리가 깨어진 갯벌은 결국 새들조차 잘 찾지 않는 죽음의 갯벌이 되고 마는 것이다.

홍재상 인하대 생명해양과학부 교수는 “사람들이 갯벌에 많이 들어가 밟고 다니는 것이 반복되면 갯벌 바닥이 점차 딱딱하게 다져지면서 퇴적물과 바닷물 사이의 물질 교환이 어려워지고 산소공급이 차단돼 저서생물이 생존이 어렵게 된다”며 “체험학습이나 관광 목적으로 개방된 갯벌 등에서 이와 같은 답압의 영향은 자연 회복이 이뤄질 틈도 없이 누적돼 심각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경원 습지보전팀장은 “환경단체의 이름을 내걸고 이뤄지는 갯벌체험 프로그램들 가운데도 갯벌의 생명을 존중하는 의식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있어 안타깝다”며 “대중들에게 갯벌이 놀이터가 아니라는 점을 적극 홍보하는 한편 생태적인 갯벌체험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화도·용유도/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