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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사회/기술

과학, 사회, 혁명운동 그리고 변증법

과학, 사회, 혁명운동 그리고 변증법

[이상한제국의앨리스](9/10) - Richard Levins의 세계


홍실이

한 달에 한 차례 글을 올리기로 편집부와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난달을 거르게 되어 (별로 기다리진 않으셨겠지만) 독자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레빈스 교수의 쿠바 체류 때문에 약속 일정이 미뤄져서...



떨어진 신뢰 회복을 위해 이번 회는 양(!)으로 승부할 생각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시고 스크롤 압박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


레빈스의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가 급진적 생태주의자이면서 (저야 잘 모르지만) 명성 높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들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어렸을(?) 적 앵무새처럼 암기나 했던 변증법의 핵심 원리들이 저의 연구 작업과 세계 인식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해야만 하는지를 깨닫고 새삼 놀랐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된 그의 이력에도 놀랐고....


이번에 그를 만난 것은, 참세상 독자들에게 과학, 사회, 변혁 운동에 대한 ‘고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픈 마음과 더불어, 저의 연구 주제와 자기정체성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는 개인적인 동기가 함께 작용한 것입니다. 이전 글들에 비추어 볼 때 매우(!) 길고 다소(?) 딱딱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즐겨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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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1)


레빈스는 미국 뉴욕 출신으로, 여성 실업자 평의회와 1930년대 뉴욕의 의류노동자 파업을 이끌었던 공산주의자 할머니, 1919년 청년 공산주의자 연맹의 창립회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3대째 공산주의자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노동자라면 우주론, 진화,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어린 레빈스가 글을 깨우치기 전부터 마르크스주의 과학자들의 저작을 읽어 주고는 했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할머니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을 배우되, 그것을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으니, 1930년대 독일에서 비롯된 인종주의적 우생학과 이윤 착취에 복무하는 기존 학문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레빈스는 노동절이면 학교를 빼먹고 존 리드 클럽이나 여성 평의회 등이 주관하는 행진에 참여했으며, 과학자이자 운동가가 되는 것을 인생의 당연한 행로로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레빈스는 1950년대 한국 전쟁과 매카시 열풍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던 시절, 푸에르토 리코 출신인 아내와 함께 1951년 푸에르토 리코로 이주했다. 그 곳에서 그는 공산당 활동과 함께 농민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FBI의 입김 때문에 대학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선택한 삶의 방편이기도 했다. 중간에 4년 동안 뉴욕에서 대학원 학업을 계속한 뒤 푸에르토 리코에 돌아갔을 때에는 정치적 억압이 다소 완화되어 있었고 그는 ‘푸에르토 리코 대학’에서 생태학 교수 자리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치 활동 - 특히 1965년부터 본격화된 베트남 반전 운동 - 은 계속되었고 1966년 종신 교수직 심사를 앞두고 FBI 끄나풀이 주도한 언론 공작에 의해 ‘무능함’을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하기에 이른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