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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일의 장편소설 '피와 뼈'

[문학기행] <60> 양석일의 장편소설 '피와 뼈'

[한국일보 2001-03-13 17:30]

<오사카(大阪)시 히가시나리(東成)구 다이세이(大成) 거리 잇쵸메(1丁目)>

변한 듯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일본이다. 어디를 가도 옛 흔적을 남겨 놓는다.

'피와 뼈' 의 현장도 그랬다. 지하철 쓰루하시(鶴橋)역에서 이마자토(今里) 방향으로 길게 뻗은 길.

히가시나리구와 이쿠노(生野)구의 경계선이다.

길 오른쪽이 유명한 쓰루하시 국제시장이다. 재일동포 상점들이 가장 많다는 곳이다.

그곳을 한참 내려가 왼쪽으로 다이세이거리 잇쵸메를 찾았지만 그런 동네와 번지가 없다.

대신 다마츠(玉津) 이쵸메(2丁目) 17번지 뿐이다. 자동차 한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골목 입구의

찻집 기둥에 붙은 녹슨 양철에서 옛 지명을찾았다.

이따금 노인들이 불안해 보이는 몸짓으로 자전거를 타고 갈 뿐 인적이 드물다.

골목에 들어서자 낮익은 문패들인 강병호 장영만이 여전히 이곳에한국인들이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마치 한 집처럼 늘어선 낮고 검은 목조 이층집 끝, 영희가 살던 집은 카페'You' 가 되었다.

돼지고기 삶는 냄새의 기억을 지우려는 듯 문을 열 때마다 커피향이 골목을 타고 흐른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막다른, 비좁은 골목에 자리잡은 김준평의 어묵공장.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주인 나카무라씨도 오래 집을 비운 듯우편물로 우편함이 가득하다.

딛고 올라서면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옥상으로 가는 나무계단이검게 썩어가고 있다.

당시 김준평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세상을 떴거나 이사를 갔다.

골목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가메오카 도시코(68) 할머니의 기억도 "어묵공장이 있었다.

1955년까지 매일 따뜻한 어묵을 사러갔다"는 것까지였다. 그 할머니는 그주인이 누구였는지, 언제 바뀌었는지 알지 못한다.

거기서 영희의 순대집은 불과 30m 거리.

밤마다 그곳을 걸어나오는 준평의 술취한 발자국 소리는 영희에게 공포였다.

작가는 그곳을 찾을 때마다 늘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발자국소리가 나면 잽싸게 아이들을 안고 옆집으로 달아나던 어머니를

기억하고는 몸서리를 친다.

< "피는 어머니, 뼈는 아버지">

제주도에서는 무당이 굿을 할 때 "피는 어머니로부터 받고, 뼈는 아버지로부터 받는다"고 말한다.

왜 '살과 피'가 아닌 '피와 뼈' 인가. 주인공 김준평은 설명한다. "피보다 뼈가 강하다.

피는 뼈에서 만든다. 사람은 죽어도 뼈는 남는다."

김준평에게 이 말은 사랑이나 운명공동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유교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자신의 뼈로 만든 자식은 내 것이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피(아내)도 결국 뼈의 것이다. 김준평에게 영희는 성욕의 대상이었고,

피를 만드는 기계에 불과했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 그는 가차없이 폭력을 휘둘렀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데리고 왔다. 배 고프면 새끼도 잡아먹는 한 마리 야생동물.

그는 일제 강점시대에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이다. 무식하고 몸 하나만믿고 사는 무일푼이다.

이 역사적 배경만으로도 그는 제국주의에 대응하는존재일 수 있다.

많은 재일동포들이 그랬다. 소설 속의 유일한 그의 친구 고신의 조차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항일정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김준평은 철저히 그것을 외면한다. 가족 폭력에서도 압제에 대응하는 한 가닥의 의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는 돈을 주지 않는다고, 잠자리를 피한다고 아내를 구타하고 가재도구를 박살 낼 뿐이다.

작가는 이를 "근대적 지(知)에 대한 반역" 이라고 했다.

인간의 모든업(業)을 한 몸에 짊어진 듯한 그의 반역은 가족의 운명을 바꿔 버린다.

딸은 자살을 하고, 아들은 "당신의 피를 받았으니까"라며 그에게 맞선다.

이 소설은 '최후에 행복해지는 것이 가족' 이라는 구원의 희망도 믿지않는다.

김준평과 그의 가족에게 주어진 것은 업보 뿐이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 북송선을 타기 직전 김준평을 찾은 아들 성환은

아버지와의 화해를 거부하고 돌아선다.

'피와 뼈'에서 김준평의 피와 뼈는 너무나 강렬하다.

폭력배조차 두려워하는 거구에 엄청난 괴력, 지칠 줄 모르는 정력과 그것을 위해 몬도가네식의 음식도 마다 않는 김준평의 몸에서

작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에너지를 느꼈다.

김준평은 우리가 근대화라는 신화로 인해 빼앗기고 잃어버린 육체의 상징이자, 또한 그것의 복권이다.

"일본 사람들도 경제가 풍요로워지면서 몸을 버렸다. 대량소비가 몸까지소비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양석일씨도 그 몸이 그리운지 모른다. 김준평은 1년 365일 중 360일을 술먹고 행패를 부린 그의 아버지였고,

그 몸이 망가지자 "어이, 자네, 자네." 하며 돌아서는 그를 불러 세우던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는 북한으로 가서 얼마 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복여동생둘은 지금도 북에 살고 있다.

"10년이나 걸렸다. 한 장 쓰고 나면 더 이상 못써 손을 놓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물밀듯이 쓰여졌다.

"어이, 자네, 자네." 하는 힘없는 목소리에 돌아보고 싶어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사라진 뒤였다."

<'피와 뼈' 줄거리>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와 어묵공장에서 일하는 김준평. 거구에괴력의 소유자로 거칠고 무자비하다.

여자와 돈을 위해서는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칼에 찔려도 꿈쩍도 않은 배짱 앞에 일본 야쿠자도 두려워한다.

그는 순대집을 하는 영희를 겁탈하듯 차지하고는 함께 살면서 피를 빨아 먹고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한다.

영희 돈으로 어묵공장을 열어 떼돈을 벌었지만, 가족을 무시하고 일본여자와 딴살림을 차려 산다.

쉰 살이 넘어서도 돈과 육체적 쾌락만을 위해산다.

결국 병이 들고, 일본인 아내가 돈을 갖고 달아나자 그는 아픈 몸으로 북송선을 탄다.

영희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성환은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않는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

양석일(65)씨는 도쿄 외곽 작은 아파트에 산다. 서향이라 그런지 한낮인데도 어둡다.

유일하게 햇살이 들어오는 식탁에서 그는 원고를 쓰는 중이었다.

그는 아사히 신문, 산케이 스포츠 등 4군데나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3년4개월째 계속되는 아사히신문의 '처음이 없으면 끝이 없다' 역시 재일동포이야기이다.

가이호출판에 연재중인 '어둠의 자식들' 은 태국의 아동, 인신, 장기(腸器)매매를 고발하고 있다.

지난 1월1일에는 '죽음은 불꽃과도 같다' 를 일본에서 출간했다. '피와뼈' 이후 3년만의 장편소설이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의 주인공문세광(소설 속의 이름은 송의철)을 모델로 했다.

주간독서는 1면 톱에 '3년간의 공백을 깬 양석일' 이란 타이틀과 함께 이소설을 소개했다.

양석일씨는 "벌써 6만부 팔려 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자랑했다. "한국어 번역판도 교섭중"이라고 했다.

'피와 뼈'의 아들 김성환처럼 그가 사업에 실패하고 오사카를 떠나 도쿄에 정착한 것은 1972년. 나이 스물 아홉이었다.

10년 동안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그가 겪었던 재일동포로서 삶과 역사와정체성의 문제.

"그것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운명이었다. 소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 '엄마' '자식' 등 몇 개단어는 일본말속에 섞어 쓴다.

그에게 '엄마' 나 '자식' 은 단순한 개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존재를 규정짓는 단어들이다.

"재일동포는 한국과 일본의 중간에서 버려진 자식 같은 존재이다. 엄마(한국)가 그립다. 그렇지만 엄마는 자식을 모른 척 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한 재일동포 얘기는 끝없이 쓰고 싶다. "

재일동포 2세로 산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끝없이 우울한 질문의 연속이다.

영화이야기로 옮겨가자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피와 뼈' 가 올 가을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감독은 최양일.

이미 그의 소설 '택시 광조곡'을 '달은 어디서 뜨는가' 란 제목의 영화로만든 동포 감독이다.

또 다른 소설 '달을 걸고' 도 한(우노필름)ㆍ일(신주쿠 양산박)합작으로 준비중이다.

박철수 감독의 '가족 시네마' 에서 그는 주연배우였다. 아버지 역을 맡은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웠다.

"처음이었다. 오디션에서 4,8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뽑혔다. 연기를 위해 원작자인 유미리 아버지도만났다" 면서

"그러나 '피와 뼈'에는 출연하지 않는다" 며 서운한 눈치다.

1월초 그는 영화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최양일 감독과 오사카 현장을 가봤다.

"아직도 아버지의 어묵공장, 아버지가 사다코와 살던 집도 그대로있어 놀랐다" 면서 약도를 꼼꼼히 그려주었다.

<연보>

▦1936년 일본 오사카(大阪) 출생

▦1980년 시집 '몽마의 저편에서', 1981년 소설 '택시 광조곡' 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활동 시작

▦소설 '택시 드라이버 일지' '단층해류' '밤의 강을 건너다' '밤을 걸고', 평론집 '아시아적 신체' '어둠의 상상력' 등

▦ 청구문학상(1990), '피와 뼈'로 야마모토 슈고로(山本周五?)상(1998)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