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11/20060404/20060404125800.html
이치범의 도박과 내 구슬놀이
[양한승 칼럼] 두 개의 악연 고리 2
양한승 메일보내기
아, 고통스러운 기억의 반추여!
2002 지방자치선거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필자의 기대는 크다. 앞서 포천소각장투쟁에 뛰어들었던 이유도 소박한 생활 이해관계에 밀착된 주민운동을 하나라도 더 일으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밑거름으로 삼자는 뜻이 강했다. 21세기가 동트자마자 출범한 대중적 사회주의 정당은 좌파의 양분이 그만큼 정치적 생산력을 골고루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은 조직적 대오를 편성한 진보세력이 최초로 지방자치선거에 임했던 해다. 선배그룹 막내로 발기모임에 이름을 올리긴 하였으나 애국주의적 슬로건이 내걸어졌던 ‘국민승리21’ 성원자격을 보류했던 필자는 당 정체성이 좌경화하여 바뀐 민주노동당이 돼서야 비로소 몸을 담고 집 앞마당 선거일꾼이 되었다.
일산신도시 개발로 시세가 급부상한 경기도 고양시는 현대생활에 잘 적응된 젊은 여론주도층이 아파트문화를 형성하면서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공기를 요구했다. 동교동에서 이사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기도 한 동네다. 고양시지구당이 지자제선거를 준비할 시점의 민주노동당 전체지지율은 5%미만이었다. 특히 대규모 노조가 밀집된 전략지역 울산이 해묵은 종파싸움으로 기대이하의 성과를 보이면서 민주노동당은 단 하나의 원내교두보도 확보하지 못하고 동아리 타성에 젖어 있었다. 외연확대가 중요한 시기였다. 지구당위원장으로 필자가 책임졌던 고양시 역시 경기도지부 당세 2위라는 상대적 체면치레나 근근이 하며 조직을 꾸리고 있었다. 마침 오랫동안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상근 실무자도 사직서를 내고 떠난 터였다.
겨우 어떻게 끼워 맞춰 선거운동 개시일 달포를 앞두고 고양·파주에 시도의원 후보 1명씩 세워서 동원채비를 갖췄다. 중앙 환경운동연합이 이치범과 일군의 정치지원자를 앞세워 고양시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 즈음이었다. 사실 고양시 환경련은 시세에 비해 유독 활동력이 떨어졌기에 환경련에서 떠들썩한 작품이 나오리라고는 지역에서 거의 예측을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대로 당 깃발을 앞세워 묵묵히 앞으로 나가는 조직이기에 어디에서 누가 무슨 후보로 나오든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도 없었다. 더구나 초창기 당을 빠르게 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새기는 전략은 자잘한 마을 공약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우선 권력 전체의 청사진을 자랑하는 연말 대선이 더 중요했다.
2002 지자체선거는 과도한 무리를 피했다. 큰 기업은 제품 광고보다 기업광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적어도 지구당의 입장은 그랬다. 필자가 환경련 후보를 비로소 인지한 것은 한겨레신문의 해괴한 1단 기사에 의해서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민주노동당이 고양시 시장후보로 이치범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을 지지한다니 무슨 까닭인가. 명백한 오보였다. 그 기사는 환경련의 언론플레이에 따라 기자가 확인 없이 썼던 것으로 지구당 항의를 받고 즉시 정정되었다. 하지만 정치공학을 좀 체득했던 필자의 입장에선 이 최초의 기사로 인해 고민에 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보를 가장한 우회적 협조요청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우직함과 달리 세밀한 지역조사를 통해 고양시를 전략지역으로 선택해 나타난 환경련은 이런저런 경로로 필자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치범 선거캠프와 한겨레 기자의 단순한 합동공작에 불과했던 것인가. 예민한 선거 시기다. 통상적 신중함조차 결여된 그 1단 기사 속에서 필자는 한편 중앙당 침묵의 의도를 읽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지자체 후보전술에 있어 민주노동당 중앙은 거의 고무도장과 다름없다. 역량도 안 될뿐더러 책임을 못질 바에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국민모금을 통해 탄생한 한겨레신문에 오보가 난 마당인데 사정조차 묻지 않는 중앙당의 이 지독한 방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역사회는 이미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일군의 중앙 환경운동연합 전사들
얼마 후 마침내 예상하던 환경련의 접촉의사가 지구당으로 타진됐다. 이치범 선거캠프에서 찾아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반갑게 맞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사회주의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조직에 관심을 갖는 귀한 손님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구당 운영위의 생각은 달랐다. 만날 필요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필자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었으나 당이 위원장 한 사람이 아니라 당원 전체의 의지로 운영된다는 것을 에둘러 자랑하며 환경련 방문을 일단 취소시켰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다시 나왔다. 여론을 주도하는 지역의 정치적 시민단체들과 이치범측이 진작부터 접촉을 하며 갈등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지역시민단체들은 반한나라당 노선에 입각하여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지방자치의 기본취지를 살려 토착성이 증명된 독자후보를 원했던 것이다.
이치범과 일군의 정치지원자들은 이른바 박힌 돌을 빼는 굴러온 돌들이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기왕에 봐왔던 물질과는 매우 다른 이질분자였다. 갈등의 골은 상당히 깊숙이 패어 있었다. 이치범측은 지역 뿌리는 아니지만 환경련의 기본이념과 활동상이 그것을 보완할 것이며 고양시라는 인구 백만의 거대신도시 선거운동에 필요한 재원이 준비돼 있음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하긴 지역만의 힘으로 단체장을 내세울만한 역량이 시민단체들에겐 없었다. 굴러온 돌인 이치범측도 자신들만으론 성과를 낼 수 없는 선거였다. 힘을 합쳐야겠는데 정치노선과 선거를 바라보는 입장이 판이했기에 만남과 논쟁을 반복하며 서로 감정만 키워왔던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그 오보는 민주노동당에 보내는 조난신호였다.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엔 한국자원공사 사장 경력의 환경련 중앙사무처장만을 자신의 자랑으로 내세웠지만 이치범은 오늘날 한나라당에 의해 제2의 하나회로 불리는 공기업 및 정부유관기관 현직 임원들 모임인 청맥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청맥회는 노무현 코드의 이른바 특권층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당시 필자는 환경련 활동 및 무소속후보라는 자격조건만을 인지하고 주목했다. 그러나 설혹 이치범 출마의 숨겨진 배경이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최악의 경우에도 2002년 현재의 고착된 낡은 지역 정치판을 상당부분 흔들어놓을 것이라 상정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환경련의 정치적 성향이야 청맥회가 아니라 그 할아비라도 민주노동당과는 거리가 많다. 더구나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환경운동가들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조난신호로 이해된 이상 나 몰라라 등을 지고 외면해선 도리가 아니었다. 필자는 지체 없이 환경련에 화답을 주었다. “만납시다.” 따로 약속을 정할 것도 없이 이치범 캠프의 핵심운동원 둘이 필자의 집으로 즉시 찾아왔다. 한 사람은 새만금투쟁으로 얼굴이 잘 알려진 환경련 전략가로 필자와 주로 이야기를 나눴으며 다른 한 사람은 지금 생각에 한때 포천소각장 문제로 큰 실망을 주기도 한 지인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려나 반갑지 않은가. 그날 필자는 자신들의 의욕적인 계획과는 달리 고양시 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선거준비 상황을 본인들에게 직접 듣게 되었다. 심지어 이치범 캠프는 지역 환경련의 은근한 텃새까지 받고 있었다. 이치범은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우리는 지역의 주요활동가들 입장에 대하여 의견을 주고받으며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민주노동당의 계급관은 환경련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꿰뚫고 있지만 환경련의 세계관은 민주노동당의 교조주의적 폐쇄성을 비웃고 있다. 다만 개인차를 발견하고 있기에 원칙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가가 중요하게 검증되는 상견례였다. 필자는 다행히 그들을 안심시켰고 그들 역시 필자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렇다면 준비된 후보가 있는 마당에 희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음 만나는 회동이지만 그날 필자는 지역을 설득할 방책을 달밤이 기우는 끝 무렵에 내놓았다. 그것은 사실상 선거운동 양상을 아우르는 밑그림이었다. 민주노동당 하나만 빼고 말이다.
녹색 캠프와 적색 가방의 조화
손님들은 상기되었다. 정당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시민단체가 겪는 선거시기의 안타까운 처지를 필자는 잘 알고 있었다. 거대 환경련이라 하더라도 여느 시민단체의 그것과 비슷한 꼴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이름만이라도 연대사업을 하고 있었던 지구당과 필자의 활동이다. 여기저기 흩어진 구슬을 한시적이나마 질서정연한 줄로 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환경련과 필자 사이의 개인연대는 당일로 초보적 얼개를 갖췄다. 이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별도의 얘기가 없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심전심 제 일을 하며 돌아가는 사정에 따라 진척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 이튿날인가, 마당발 노릇을 즐겁게 감수하며 한국전쟁 때의 민간인학살 문제에 매달려 있던 지역선배 한 분이 찾아왔다.
그 분은 비교적 지역사회에서 필자와 신뢰를 맺고 있었다. 아무개 집에서 지역의 각 단체 대표자들과 이치범 캠프가 모여 이 문제를 마지막으로 담판 중이니 같이 참석하여 잘 되도록 조정을 하자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차에 동승했다. 자자체선거를 바라보는 이치범 캠프의 발제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시민단체들이 결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결정되는 자리였다. 말미에 참석자들로부터 비공개로 해줄 것을 당부 받았던 이 모임은 훗날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민주노동당으로선 이런저런 비용계산의 부담이 없는 편안한 주막집과 다름없었다. 필자가 자리에 앉자 어제 만났던 예의 환경련 전략가가 발제를 하였다. 서너 장의 압축된 문건은 요소요소를 잘 짚고 있었다.
기억으로만 쓰는 글이니 당시 필자가 속했던 조직과 관련된 한 가지만 밝히면, 민주노동당 전략지역인 울산은 환경련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환경련이 전략적으로 뛰어든 고양시는 민주노동당이 환경련을 지지하자는 맹아적 적·녹연대안이 발제안에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특별히 문건에 적지 않아도 사회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에겐 상식적인 표심을 그린 도식이지만 이 모임에선 두 가지 목적을 띠고 있었다. 하나는 민주노동당과 짜임새 있는 연대를 예고하며 그 자리의 시민단체 대표자들을 압박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시민후보 카드로 인해 당 정체성 논란으로 시달릴 필자에게 주는 우호적 비타민이었다. 허나, 후자의 경우 이것은 환경련의 지나친 배려다.
시장후보를 내지 못한 고양시 민주노동당은 이미 지난 내부회의를 통해 지구당이 참관단체로 있는 시민단체연대회의(환경련 포함)가 무소속 시장후보를 단일하게 세우면 그것을 지지하겠다고 결정한 바 있었다. 나중에 혹시 생길 입장 차이에 의한 당원들의 혼란스러운 갈등을 미리 단속하는 장치였다. 따라서 이치범 후보가 물러서지 않는 속에서 환경련 등이 빠진 시민단체회의가 다른 사람을 시민후보 이름으로 세운다면 민주노동당은 고민할 필요 없이 그 두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 결정은 시민단체들로 하여금 민주당에서 독립된 선거연대 노력을 기울이라는 경고도 되었다. 어쨌거나 그 모임은 기왕에 말로만 듣던 격한 논쟁이 필자에게 목격되는 자리였다.
환경련을 제외한 시민단체들은 현재 시의원을 하고 있는 토박이 다른 사람을 시장후보로 내세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언급된 이 분은 지구당의 토박이 간부들과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그는 단지 이치범 출마에 자극받아 급히 모색된 후보지망자로 자금 등 시장후보로서의 최소 준비도 없었다. 다툼만 있고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필자는 참석자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말 한 마디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후보 한 사람이라야 민주노동당은 선거연대 자격을 갖는다. 합의를 이룰 때까지 나는 여기서 계속 술을 마시겠다.” 갑자기 참새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이 썰렁한 선언은 시민단체 대표자들에겐 위협적인 실력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당이 안심할 수 있는 지방자치 운동체
다른 지망자의 출마선언이 아직 공식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사람의 후보란 이치범을 지칭하는 것이며 날짜를 더 끌지 말고 합의하라는 말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주장하여 억지를 꾸며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분위기는 급변했다. 필자가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에 시민단체 대표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귓속말을 주고받고 서로 양보하면서 마침내 이치범에게 명실상부한 시민후보의 예비자격증을 발급했다. 이치범은 진작 두 가지를 약속하고 있었다. 선거가 끝나더라도 지역에 정착하여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기성 보수정당과는 인연을 맺지 않겠다. 이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만족시키는 철석같은 결의였다.
그날 이후 이치범 캠프는 일사천리였다. 안으로는 지인들을 불러 모으고 밖으로는 유관 시민단체를 포괄한 선거운동 조직을 출범시키면 되는 것이다. 중간에 예의 언급된 후보지망자가 나서서 이치범과 경선모양을 취하는 등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파탄 위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치범은 이미 대세를 형성했다. 환경련이 다시 한 번 도움을 요청하고 필자가 호응하여 음모적인 시민후보 경선을 비판하며 이치범 명분을 설득력 있게 세운 것은 바로 그 첫 모임의 결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에게 남은 과제는 변화된 상황에서의 민주노동당 선거전략을 어떻게 극대화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앞서 지구당 간부 다수가 이치범 선거캠프의 방문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뜻밖의 완고한 이런 태도가 간부들로부터 나온 주된 이유는 토박이 정서가 지역 시민단체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근본주의적 당 정체성만을 머리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경련은 당신들의 사회운동 경험 속에서는 신뢰가 가지 않는 조직이다. 하지만 중심이 강한 사람이 유연성을 발휘한다. 갑자기 몸이 지나치게 뻣뻣해지면 그 사람의 척추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고 먼저 진단해 봐야 한다. 지구당 운영위를 구성하는 다수 간부들은 필자보다 지역여론이 돌아가는 사정에 더 밝았지만 사회과학적 운동에는 당신들의 결점을 쉽게 드러냈다. 더구나 적대관계도 아닌 손님들의 방문의사에 그렇게 빗장을 걸고 있는 것은 개방된 대중정당의 자세는 물론 이웃공동체의 기본적 예의에도 어긋난다.
관공서의 높은 문턱이 왜 국민들에게 원성을 사겠는가. 사건이 많지만 글을 단축하지 않으면 픽션이 두드러진다. 지구당은 시도의원 한 사람씩 준비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한쪽 구석에선 보이지 않는 구슬 하나를 더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경기도지사후보였다. 그것을 손에 움켜쥐고 표심을 향해 던졌을 때, 주요 시민단체를 포괄하고 민주노동당이 참여한 고양시 선거운동은 숱한 난관 끝에 겨우 자격을 얻은 이치범 중심의 미심쩍은 시스템이 아니라 ‘도지사후보(민주노동당)-시장후보(무소속)-시도의원후보(무소속과 민주노동당)’로 대오를 갖춘 아름다운 운동체가 되는 것이다. 5%미만의 지지율과 미약한 재원에 헐떡이고 있는 민주노동당 입장에선 지자체선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며 안심할 수 있는 구조였다.
기대했던 후보전술은 실현되고 선대위는 꾸려졌다. 경기남부 수원에서 조직된 민주노동당 도지사후보는 아무 저항 없이 경기북부 고양시에서 시민후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설 수 있었다. 선거운동 기간 중 이치범후보와 바쁜 소주잔도 기울이며 흘깃 보고 버려지는 선거포스터 및 명함을 낯선 시민단체 사무실에 돌려 자체 소화시킬 수 있었다. 환경련에서 긁어모은 열렬한 이치범 선거운동원들은 곧 민주노동당의 비조직 선거운동원이기도 했다. 이치범과 십여 명의 시도의원후보들 도우미로 단상에 올라선 민주노동당 연설원은 맘껏 당 후보와 정책을 거리의 환호 속에 외칠 수 있었다. 초라한 당이 쩔쩔매고 홀로 움직이는 선거운동은 그늘이 졌으나 비교적 풍부한 재원으로 이런저런 재비를 갖춘 그들의 설치무대는 민주노동당에게 빛을 투영했다.
이치범의 배신과 좌파운동가의 긴 호흡
잃을 것이 전무한 민주노동당은 2002 지자체선거에서 얻은 것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이치범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환경련 등 선거캠프의 장담에 턱 없이 못 미치는 13%에 그쳤다. 빨갱이라는 편견에 시달렸던 2년 전 창당원년에 민주노동당 고양시 국회의원후보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획득했던 지지율의 두 배에 머물렀다. 반면 거리청소원 직업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덕양구 주교동 시의원 여성후보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여 18%를 얻었다. 또한 시민후보 자격을 갖춘 시의원후보 절반이 당선되었다. 나이 많은 인물과 미군기지 철수 공약 모두 지역정서와 판이했던 도지사후보 지지율도 타 지역에 떨어지지 않았다. 더욱 고무적인 지점은 필자가 강조했던 연말 대통령선거에서 꿈의 두 자리 득표율에 근접하는 정치환경을 고양시가 일정하게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2002 지자체 선거는 민주노동당에게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교훈을 주었다. 하지만 비관에 빠진 것은 환경련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이었다. 다시는 범시민후보라는 이름을 만드는 선거조직을 꾸리지 않겠노라 결론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의 일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특정정당 지지를 분명하게 표방하고 활동하지 않는 정치적 시민사회단체는 선거시기가 다가오면 늘 같은 유혹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5월말에 실시되는 이번 2006 지방자치선거에 고양시 시민단체들은 어떻게 임하고 있을까. 짐작건대 민주당과 여전히 끈을 달고 있는 조직은 파리를 날리고 있을 것이며 일부에선 저마다 열린우리당에 줄을 대기 위해 분칠을 하고 문턱을 바쁘게 드나들고 있을 것이다.
이치범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지역 시민단체여론을 배신하고 중앙정치로 뛰어들었다. 이것은 선거 이후에도 지역 환경운동가로 남아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보수정당과는 선을 맺지 않겠다고 한 애초의 정치적 약속을 어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치범의 고양시 활동은 선거기간에 국한됐던 일로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무모한 도박을 한 것에 불과하다. 도박은 거짓이 진실을 누르고 드러난 진실은 거짓보다 두렵다. 필자는 신뢰 없는 그가 노무현 명함을 뿌리고 서울로 달아났을 때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정작 선거기간 중 이치범과 갈등했던 시민단체의 다수 성원들은 그의 약삭빠른 변신에 침묵을 하였다. 결국 초록은 동색이 아니던가. 현 집권세력은 DJ에서 열린우리당 노짱으로 옮겨간 것이다.
지난 3월 15일 이치범은 환경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골프파동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마지막 인사권 행사였다. 공교롭게도 하루 뒤에는 환경련이 그토록 공을 들였던 새만금방조제건설 반대투쟁이 사법사형에 처한 날이었다. 4년 7개월을 끌었던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정부 손을 들어줬다. 이치범은 자신의 굵직한 환경련 이력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한 손의 혹독한 채찍질을 다른 한 손의 꿀떡으로 누그러뜨리려는 얄팍한 술수다. 그가 환경부장관에 임명된 그 다음날, 2002 지자체선거에서 최초의 담판이 있던 모임에 필자를 데려갔던 예의 지역선배에게 메일 한 통이 배달됐다. 그는 시민후보 선대위의 집행위원장을 맡았었다. 필자가 3년 전 일선정치 활동을 접고서는 얼굴을 뵙지 못했다.
편지 화면은 건조했다. 이치범 환경부장관에게 술 한 잔 산다는 연락이 왔으니 의향이 어떠냐는 대여섯 줄 내용이 전부다. 당시 공식조직에서 필자가 노동자·시민후보 진영의 공동대표자로 이치범과 깊숙이 몸을 섞었던 관계이기에 전언을 했을 것이다. 여전히 민간인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발신자는 국무위원이 된 신임장관에 대한 기대가 다소나마 있는 듯하다. 필자는 답장을 주지 않았다. 오늘 이 글이 한편으론 그 응답이 되어 무심한 친구라는 힐난을 면했으면 한다. 중간에 빠진 사연이 많다. 특별히 지구당의 숱한 논란 및 당과 시민단체 그리고 선거운동원 각각이 부딪쳤던 알력은 소개하지 않았다. 이 글은 인연을 주제로 놓고 필자와 이치범의 관계를 그리자는 게 취지였던 만큼 양해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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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지방자치선거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필자의 기대는 크다. 앞서 포천소각장투쟁에 뛰어들었던 이유도 소박한 생활 이해관계에 밀착된 주민운동을 하나라도 더 일으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밑거름으로 삼자는 뜻이 강했다. 21세기가 동트자마자 출범한 대중적 사회주의 정당은 좌파의 양분이 그만큼 정치적 생산력을 골고루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은 조직적 대오를 편성한 진보세력이 최초로 지방자치선거에 임했던 해다. 선배그룹 막내로 발기모임에 이름을 올리긴 하였으나 애국주의적 슬로건이 내걸어졌던 ‘국민승리21’ 성원자격을 보류했던 필자는 당 정체성이 좌경화하여 바뀐 민주노동당이 돼서야 비로소 몸을 담고 집 앞마당 선거일꾼이 되었다.
일산신도시 개발로 시세가 급부상한 경기도 고양시는 현대생활에 잘 적응된 젊은 여론주도층이 아파트문화를 형성하면서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공기를 요구했다. 동교동에서 이사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기도 한 동네다. 고양시지구당이 지자제선거를 준비할 시점의 민주노동당 전체지지율은 5%미만이었다. 특히 대규모 노조가 밀집된 전략지역 울산이 해묵은 종파싸움으로 기대이하의 성과를 보이면서 민주노동당은 단 하나의 원내교두보도 확보하지 못하고 동아리 타성에 젖어 있었다. 외연확대가 중요한 시기였다. 지구당위원장으로 필자가 책임졌던 고양시 역시 경기도지부 당세 2위라는 상대적 체면치레나 근근이 하며 조직을 꾸리고 있었다. 마침 오랫동안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상근 실무자도 사직서를 내고 떠난 터였다.
겨우 어떻게 끼워 맞춰 선거운동 개시일 달포를 앞두고 고양·파주에 시도의원 후보 1명씩 세워서 동원채비를 갖췄다. 중앙 환경운동연합이 이치범과 일군의 정치지원자를 앞세워 고양시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 즈음이었다. 사실 고양시 환경련은 시세에 비해 유독 활동력이 떨어졌기에 환경련에서 떠들썩한 작품이 나오리라고는 지역에서 거의 예측을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대로 당 깃발을 앞세워 묵묵히 앞으로 나가는 조직이기에 어디에서 누가 무슨 후보로 나오든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도 없었다. 더구나 초창기 당을 빠르게 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새기는 전략은 자잘한 마을 공약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우선 권력 전체의 청사진을 자랑하는 연말 대선이 더 중요했다.
2002 지자체선거는 과도한 무리를 피했다. 큰 기업은 제품 광고보다 기업광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적어도 지구당의 입장은 그랬다. 필자가 환경련 후보를 비로소 인지한 것은 한겨레신문의 해괴한 1단 기사에 의해서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민주노동당이 고양시 시장후보로 이치범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을 지지한다니 무슨 까닭인가. 명백한 오보였다. 그 기사는 환경련의 언론플레이에 따라 기자가 확인 없이 썼던 것으로 지구당 항의를 받고 즉시 정정되었다. 하지만 정치공학을 좀 체득했던 필자의 입장에선 이 최초의 기사로 인해 고민에 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보를 가장한 우회적 협조요청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우직함과 달리 세밀한 지역조사를 통해 고양시를 전략지역으로 선택해 나타난 환경련은 이런저런 경로로 필자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치범 선거캠프와 한겨레 기자의 단순한 합동공작에 불과했던 것인가. 예민한 선거 시기다. 통상적 신중함조차 결여된 그 1단 기사 속에서 필자는 한편 중앙당 침묵의 의도를 읽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지자체 후보전술에 있어 민주노동당 중앙은 거의 고무도장과 다름없다. 역량도 안 될뿐더러 책임을 못질 바에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국민모금을 통해 탄생한 한겨레신문에 오보가 난 마당인데 사정조차 묻지 않는 중앙당의 이 지독한 방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역사회는 이미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일군의 중앙 환경운동연합 전사들
얼마 후 마침내 예상하던 환경련의 접촉의사가 지구당으로 타진됐다. 이치범 선거캠프에서 찾아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반갑게 맞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사회주의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조직에 관심을 갖는 귀한 손님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구당 운영위의 생각은 달랐다. 만날 필요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필자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었으나 당이 위원장 한 사람이 아니라 당원 전체의 의지로 운영된다는 것을 에둘러 자랑하며 환경련 방문을 일단 취소시켰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다시 나왔다. 여론을 주도하는 지역의 정치적 시민단체들과 이치범측이 진작부터 접촉을 하며 갈등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지역시민단체들은 반한나라당 노선에 입각하여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지방자치의 기본취지를 살려 토착성이 증명된 독자후보를 원했던 것이다.
이치범과 일군의 정치지원자들은 이른바 박힌 돌을 빼는 굴러온 돌들이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기왕에 봐왔던 물질과는 매우 다른 이질분자였다. 갈등의 골은 상당히 깊숙이 패어 있었다. 이치범측은 지역 뿌리는 아니지만 환경련의 기본이념과 활동상이 그것을 보완할 것이며 고양시라는 인구 백만의 거대신도시 선거운동에 필요한 재원이 준비돼 있음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하긴 지역만의 힘으로 단체장을 내세울만한 역량이 시민단체들에겐 없었다. 굴러온 돌인 이치범측도 자신들만으론 성과를 낼 수 없는 선거였다. 힘을 합쳐야겠는데 정치노선과 선거를 바라보는 입장이 판이했기에 만남과 논쟁을 반복하며 서로 감정만 키워왔던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그 오보는 민주노동당에 보내는 조난신호였다.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엔 한국자원공사 사장 경력의 환경련 중앙사무처장만을 자신의 자랑으로 내세웠지만 이치범은 오늘날 한나라당에 의해 제2의 하나회로 불리는 공기업 및 정부유관기관 현직 임원들 모임인 청맥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청맥회는 노무현 코드의 이른바 특권층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당시 필자는 환경련 활동 및 무소속후보라는 자격조건만을 인지하고 주목했다. 그러나 설혹 이치범 출마의 숨겨진 배경이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최악의 경우에도 2002년 현재의 고착된 낡은 지역 정치판을 상당부분 흔들어놓을 것이라 상정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환경련의 정치적 성향이야 청맥회가 아니라 그 할아비라도 민주노동당과는 거리가 많다. 더구나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환경운동가들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조난신호로 이해된 이상 나 몰라라 등을 지고 외면해선 도리가 아니었다. 필자는 지체 없이 환경련에 화답을 주었다. “만납시다.” 따로 약속을 정할 것도 없이 이치범 캠프의 핵심운동원 둘이 필자의 집으로 즉시 찾아왔다. 한 사람은 새만금투쟁으로 얼굴이 잘 알려진 환경련 전략가로 필자와 주로 이야기를 나눴으며 다른 한 사람은 지금 생각에 한때 포천소각장 문제로 큰 실망을 주기도 한 지인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려나 반갑지 않은가. 그날 필자는 자신들의 의욕적인 계획과는 달리 고양시 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선거준비 상황을 본인들에게 직접 듣게 되었다. 심지어 이치범 캠프는 지역 환경련의 은근한 텃새까지 받고 있었다. 이치범은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우리는 지역의 주요활동가들 입장에 대하여 의견을 주고받으며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민주노동당의 계급관은 환경련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꿰뚫고 있지만 환경련의 세계관은 민주노동당의 교조주의적 폐쇄성을 비웃고 있다. 다만 개인차를 발견하고 있기에 원칙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가가 중요하게 검증되는 상견례였다. 필자는 다행히 그들을 안심시켰고 그들 역시 필자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렇다면 준비된 후보가 있는 마당에 희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음 만나는 회동이지만 그날 필자는 지역을 설득할 방책을 달밤이 기우는 끝 무렵에 내놓았다. 그것은 사실상 선거운동 양상을 아우르는 밑그림이었다. 민주노동당 하나만 빼고 말이다.
녹색 캠프와 적색 가방의 조화
손님들은 상기되었다. 정당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시민단체가 겪는 선거시기의 안타까운 처지를 필자는 잘 알고 있었다. 거대 환경련이라 하더라도 여느 시민단체의 그것과 비슷한 꼴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이름만이라도 연대사업을 하고 있었던 지구당과 필자의 활동이다. 여기저기 흩어진 구슬을 한시적이나마 질서정연한 줄로 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환경련과 필자 사이의 개인연대는 당일로 초보적 얼개를 갖췄다. 이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별도의 얘기가 없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심전심 제 일을 하며 돌아가는 사정에 따라 진척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 이튿날인가, 마당발 노릇을 즐겁게 감수하며 한국전쟁 때의 민간인학살 문제에 매달려 있던 지역선배 한 분이 찾아왔다.
그 분은 비교적 지역사회에서 필자와 신뢰를 맺고 있었다. 아무개 집에서 지역의 각 단체 대표자들과 이치범 캠프가 모여 이 문제를 마지막으로 담판 중이니 같이 참석하여 잘 되도록 조정을 하자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차에 동승했다. 자자체선거를 바라보는 이치범 캠프의 발제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시민단체들이 결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결정되는 자리였다. 말미에 참석자들로부터 비공개로 해줄 것을 당부 받았던 이 모임은 훗날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민주노동당으로선 이런저런 비용계산의 부담이 없는 편안한 주막집과 다름없었다. 필자가 자리에 앉자 어제 만났던 예의 환경련 전략가가 발제를 하였다. 서너 장의 압축된 문건은 요소요소를 잘 짚고 있었다.
기억으로만 쓰는 글이니 당시 필자가 속했던 조직과 관련된 한 가지만 밝히면, 민주노동당 전략지역인 울산은 환경련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환경련이 전략적으로 뛰어든 고양시는 민주노동당이 환경련을 지지하자는 맹아적 적·녹연대안이 발제안에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특별히 문건에 적지 않아도 사회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에겐 상식적인 표심을 그린 도식이지만 이 모임에선 두 가지 목적을 띠고 있었다. 하나는 민주노동당과 짜임새 있는 연대를 예고하며 그 자리의 시민단체 대표자들을 압박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시민후보 카드로 인해 당 정체성 논란으로 시달릴 필자에게 주는 우호적 비타민이었다. 허나, 후자의 경우 이것은 환경련의 지나친 배려다.
시장후보를 내지 못한 고양시 민주노동당은 이미 지난 내부회의를 통해 지구당이 참관단체로 있는 시민단체연대회의(환경련 포함)가 무소속 시장후보를 단일하게 세우면 그것을 지지하겠다고 결정한 바 있었다. 나중에 혹시 생길 입장 차이에 의한 당원들의 혼란스러운 갈등을 미리 단속하는 장치였다. 따라서 이치범 후보가 물러서지 않는 속에서 환경련 등이 빠진 시민단체회의가 다른 사람을 시민후보 이름으로 세운다면 민주노동당은 고민할 필요 없이 그 두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 결정은 시민단체들로 하여금 민주당에서 독립된 선거연대 노력을 기울이라는 경고도 되었다. 어쨌거나 그 모임은 기왕에 말로만 듣던 격한 논쟁이 필자에게 목격되는 자리였다.
환경련을 제외한 시민단체들은 현재 시의원을 하고 있는 토박이 다른 사람을 시장후보로 내세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언급된 이 분은 지구당의 토박이 간부들과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그는 단지 이치범 출마에 자극받아 급히 모색된 후보지망자로 자금 등 시장후보로서의 최소 준비도 없었다. 다툼만 있고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필자는 참석자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말 한 마디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후보 한 사람이라야 민주노동당은 선거연대 자격을 갖는다. 합의를 이룰 때까지 나는 여기서 계속 술을 마시겠다.” 갑자기 참새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이 썰렁한 선언은 시민단체 대표자들에겐 위협적인 실력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당이 안심할 수 있는 지방자치 운동체
다른 지망자의 출마선언이 아직 공식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사람의 후보란 이치범을 지칭하는 것이며 날짜를 더 끌지 말고 합의하라는 말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주장하여 억지를 꾸며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분위기는 급변했다. 필자가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에 시민단체 대표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귓속말을 주고받고 서로 양보하면서 마침내 이치범에게 명실상부한 시민후보의 예비자격증을 발급했다. 이치범은 진작 두 가지를 약속하고 있었다. 선거가 끝나더라도 지역에 정착하여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기성 보수정당과는 인연을 맺지 않겠다. 이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만족시키는 철석같은 결의였다.
그날 이후 이치범 캠프는 일사천리였다. 안으로는 지인들을 불러 모으고 밖으로는 유관 시민단체를 포괄한 선거운동 조직을 출범시키면 되는 것이다. 중간에 예의 언급된 후보지망자가 나서서 이치범과 경선모양을 취하는 등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파탄 위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치범은 이미 대세를 형성했다. 환경련이 다시 한 번 도움을 요청하고 필자가 호응하여 음모적인 시민후보 경선을 비판하며 이치범 명분을 설득력 있게 세운 것은 바로 그 첫 모임의 결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에게 남은 과제는 변화된 상황에서의 민주노동당 선거전략을 어떻게 극대화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앞서 지구당 간부 다수가 이치범 선거캠프의 방문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뜻밖의 완고한 이런 태도가 간부들로부터 나온 주된 이유는 토박이 정서가 지역 시민단체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근본주의적 당 정체성만을 머리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경련은 당신들의 사회운동 경험 속에서는 신뢰가 가지 않는 조직이다. 하지만 중심이 강한 사람이 유연성을 발휘한다. 갑자기 몸이 지나치게 뻣뻣해지면 그 사람의 척추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고 먼저 진단해 봐야 한다. 지구당 운영위를 구성하는 다수 간부들은 필자보다 지역여론이 돌아가는 사정에 더 밝았지만 사회과학적 운동에는 당신들의 결점을 쉽게 드러냈다. 더구나 적대관계도 아닌 손님들의 방문의사에 그렇게 빗장을 걸고 있는 것은 개방된 대중정당의 자세는 물론 이웃공동체의 기본적 예의에도 어긋난다.
관공서의 높은 문턱이 왜 국민들에게 원성을 사겠는가. 사건이 많지만 글을 단축하지 않으면 픽션이 두드러진다. 지구당은 시도의원 한 사람씩 준비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한쪽 구석에선 보이지 않는 구슬 하나를 더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경기도지사후보였다. 그것을 손에 움켜쥐고 표심을 향해 던졌을 때, 주요 시민단체를 포괄하고 민주노동당이 참여한 고양시 선거운동은 숱한 난관 끝에 겨우 자격을 얻은 이치범 중심의 미심쩍은 시스템이 아니라 ‘도지사후보(민주노동당)-시장후보(무소속)-시도의원후보(무소속과 민주노동당)’로 대오를 갖춘 아름다운 운동체가 되는 것이다. 5%미만의 지지율과 미약한 재원에 헐떡이고 있는 민주노동당 입장에선 지자체선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며 안심할 수 있는 구조였다.
기대했던 후보전술은 실현되고 선대위는 꾸려졌다. 경기남부 수원에서 조직된 민주노동당 도지사후보는 아무 저항 없이 경기북부 고양시에서 시민후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설 수 있었다. 선거운동 기간 중 이치범후보와 바쁜 소주잔도 기울이며 흘깃 보고 버려지는 선거포스터 및 명함을 낯선 시민단체 사무실에 돌려 자체 소화시킬 수 있었다. 환경련에서 긁어모은 열렬한 이치범 선거운동원들은 곧 민주노동당의 비조직 선거운동원이기도 했다. 이치범과 십여 명의 시도의원후보들 도우미로 단상에 올라선 민주노동당 연설원은 맘껏 당 후보와 정책을 거리의 환호 속에 외칠 수 있었다. 초라한 당이 쩔쩔매고 홀로 움직이는 선거운동은 그늘이 졌으나 비교적 풍부한 재원으로 이런저런 재비를 갖춘 그들의 설치무대는 민주노동당에게 빛을 투영했다.
이치범의 배신과 좌파운동가의 긴 호흡
잃을 것이 전무한 민주노동당은 2002 지자체선거에서 얻은 것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이치범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환경련 등 선거캠프의 장담에 턱 없이 못 미치는 13%에 그쳤다. 빨갱이라는 편견에 시달렸던 2년 전 창당원년에 민주노동당 고양시 국회의원후보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획득했던 지지율의 두 배에 머물렀다. 반면 거리청소원 직업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덕양구 주교동 시의원 여성후보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여 18%를 얻었다. 또한 시민후보 자격을 갖춘 시의원후보 절반이 당선되었다. 나이 많은 인물과 미군기지 철수 공약 모두 지역정서와 판이했던 도지사후보 지지율도 타 지역에 떨어지지 않았다. 더욱 고무적인 지점은 필자가 강조했던 연말 대통령선거에서 꿈의 두 자리 득표율에 근접하는 정치환경을 고양시가 일정하게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2002 지자체 선거는 민주노동당에게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교훈을 주었다. 하지만 비관에 빠진 것은 환경련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이었다. 다시는 범시민후보라는 이름을 만드는 선거조직을 꾸리지 않겠노라 결론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의 일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특정정당 지지를 분명하게 표방하고 활동하지 않는 정치적 시민사회단체는 선거시기가 다가오면 늘 같은 유혹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5월말에 실시되는 이번 2006 지방자치선거에 고양시 시민단체들은 어떻게 임하고 있을까. 짐작건대 민주당과 여전히 끈을 달고 있는 조직은 파리를 날리고 있을 것이며 일부에선 저마다 열린우리당에 줄을 대기 위해 분칠을 하고 문턱을 바쁘게 드나들고 있을 것이다.
이치범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지역 시민단체여론을 배신하고 중앙정치로 뛰어들었다. 이것은 선거 이후에도 지역 환경운동가로 남아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보수정당과는 선을 맺지 않겠다고 한 애초의 정치적 약속을 어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치범의 고양시 활동은 선거기간에 국한됐던 일로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무모한 도박을 한 것에 불과하다. 도박은 거짓이 진실을 누르고 드러난 진실은 거짓보다 두렵다. 필자는 신뢰 없는 그가 노무현 명함을 뿌리고 서울로 달아났을 때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정작 선거기간 중 이치범과 갈등했던 시민단체의 다수 성원들은 그의 약삭빠른 변신에 침묵을 하였다. 결국 초록은 동색이 아니던가. 현 집권세력은 DJ에서 열린우리당 노짱으로 옮겨간 것이다.
지난 3월 15일 이치범은 환경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골프파동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마지막 인사권 행사였다. 공교롭게도 하루 뒤에는 환경련이 그토록 공을 들였던 새만금방조제건설 반대투쟁이 사법사형에 처한 날이었다. 4년 7개월을 끌었던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정부 손을 들어줬다. 이치범은 자신의 굵직한 환경련 이력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한 손의 혹독한 채찍질을 다른 한 손의 꿀떡으로 누그러뜨리려는 얄팍한 술수다. 그가 환경부장관에 임명된 그 다음날, 2002 지자체선거에서 최초의 담판이 있던 모임에 필자를 데려갔던 예의 지역선배에게 메일 한 통이 배달됐다. 그는 시민후보 선대위의 집행위원장을 맡았었다. 필자가 3년 전 일선정치 활동을 접고서는 얼굴을 뵙지 못했다.
편지 화면은 건조했다. 이치범 환경부장관에게 술 한 잔 산다는 연락이 왔으니 의향이 어떠냐는 대여섯 줄 내용이 전부다. 당시 공식조직에서 필자가 노동자·시민후보 진영의 공동대표자로 이치범과 깊숙이 몸을 섞었던 관계이기에 전언을 했을 것이다. 여전히 민간인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발신자는 국무위원이 된 신임장관에 대한 기대가 다소나마 있는 듯하다. 필자는 답장을 주지 않았다. 오늘 이 글이 한편으론 그 응답이 되어 무심한 친구라는 힐난을 면했으면 한다. 중간에 빠진 사연이 많다. 특별히 지구당의 숱한 논란 및 당과 시민단체 그리고 선거운동원 각각이 부딪쳤던 알력은 소개하지 않았다. 이 글은 인연을 주제로 놓고 필자와 이치범의 관계를 그리자는 게 취지였던 만큼 양해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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