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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아래 환경 파괴는 필연 - '막가파식 개발' 이명박 정권이 확인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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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아래 환경 파괴는 필연"
  '막가파식 개발' 이명박 정권이 확인시켜
  이헌석 청년환경센터 대표
환경대통령이 나올 수 없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그 많은 정권 가운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정권은 보기 드물다. 특히 박정희, 이승만 정권에 대한 보수진영의 향수와 진보진영의 싸늘한 평가처럼 각 정권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인 양상마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환경 대통령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없었다”는 것에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최근의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새만금간척사업,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문제 등으로 환경단체의 질타를 한 몸에 받았다. 심지어 환경단체들로부터 ‘환경비상시국’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실 한국 헌정사에서 환경대통령이 나올 수 없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환경문제가 제대로 전면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21세기가 시작된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사회는 ‘환경문제=배부른 자의 투정’이라는 60`~70년대 정서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류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기후변화문제, 에너지문제 등에 대해 연일 언론에서 떠들고 있으나 이것은 아직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또 다른 한편으론 최근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개발주의와 맞물려 ‘환경문제 제기=이상적인 주장’이라는 새로운 등식까지 나타나고 있다. 더 개발하고 파이를 키워서 국민의 일자리 등을 확충해야 하는데 “환경운동이 발목잡고 있다”는 식의 논리는 벌써 몇 십 년 째 반복되고 있다.
환경대통령이 출현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정치세력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아서이다. 60여 년간 이어온 보수정치 중심의 정치구도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로 약간의 파열구를 낸 것은 사실이나 아직 전면적 등장이라고 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환경문제를 정치적 의제화해 내기엔 더욱 갈 길이 멀다. 유럽 녹색당이 다수당은 아니지만, 그들이 정치 의제화 해낸 생태, 여성, 평등 등의 가치는 유럽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생각할 때 새로운 세력이 다수파로 등장하는 것과 새로운 정치의제를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 모두 아직 갈 길이 멀다.
 
‘독보적’ 이명박 정권의 반생태적 행태
우리 정치사에서 환경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의 행태는 가히 독보적(!)이다. 시장 재임 시절부터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아온 청계천 복원문제로부터 선거의 주요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공약 등은 이미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반생태적 키워드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독보성은 단지 큰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데 있지 않다. 먼저 이명박 정권은 건설 프로젝트의 민관 결탁을 ‘공공연히 드러낸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 국책사업 프로젝트에서 민간 건설업체의 역할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단지 국가의 지시에 따라 건설공사만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기 이전단계부터 참여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관련 법령을 고치거나 만드는 일에까지 개입하기도 한다.
이때 기업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국가 정책이나 건설프로젝트에 개입하기 마련이다. 경부대운하 공약을 만드는데 직접 참여했던 유신코퍼레이션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서 사업제안서와 사전 환경성평가서 등을 작성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건설업계와 정부가 맺어온 암묵적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건설업계 CEO 출신답게 이명박 정부는 - 건설업계에선 상식에 속하는 - 이러한 일들을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진행하고 있다.
‘드러내놓고’ 하는 나쁜 짓과 ‘뒤에서 하는’ 나쁜 짓의 질적 차이가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는 남 몰래하는 것이 더 중한 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이러한 행태는 60~70년대부터 암암리에 진행되어 온 기업과 정부의 결탁에 기반한 국책사업프로젝트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치밀하게 고민해오지 못한 자본주의의 단면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표현했던 것처럼 대통령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이며, 정부는 ‘비지니스 프랜들리’ 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대통령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감추려고만 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이를 위해 정부를 더 적극적으로 바꾸고자하는 대통령인 것이다.
 
‘소통의 문제’ 아니라 ‘입장 차이’
이명박 정권의 두 번째 독보성은 ‘소통’에서 드러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유행한 여러 가지 말들 가운데 ‘오해’와 ‘소통’이란 말이 있다. 영어몰입교육과 ‘어륀지’파문, 최근 쇠고기 광우병 문제로 시끄러울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해’가 있으며 ‘소통’이 되지 않아서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혹자들은 대통령이 정말로 민심을 몰라서 그러는 건가라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오해’ 타령은 이전 정권부터 계속 공무원들이 해오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 초기 부안군민들이 핵폐기장 반대 촛불집회를 할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핵폐기장을 잘못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으며, 한미 FTA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오해와 진실’이라는 홍보물까지 만들어서 돌리기도 했다.
국민의 의견을 수용해야 할 것으로 보기보다는 국민을 계몽하고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오해’ 논란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며, 이를 국민들이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반대에 나서는 것은 정부의 업무 추진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관료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오해’ 논란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전 정권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정도가 너무나 노골적이라는 데에 있다.
경부대운하를 둘러싼 논란이 심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기존 강에 대한 치수사업을 먼저 할 것을 지시했다. 그동안 경부대운하 논쟁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운하의 건설 목적이 뭘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물류-유통망을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 운하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가, 이후에는 관광-지역개발을 목적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치수사업이 주요 목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 돌리기의 이면에 “경부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는 그대로 있을 뿐 정부가 밝히고 있는 여러가지 건설 목적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다.
쇠고기 광우병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조차 조심스럽게 재협상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협상문은 그대로 둔 채 부족한 추가 문서를 작성하면 마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이명박 정권의 뚝심(!)과 저돌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직 남은 문제들과 그 공통점
고소영 내각, 영어몰입교육, 쇠고기 광우병문제, 한반도 대운하… 출범한지 100여일 밖에 지나지 않은 정권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문제를 터뜨리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지만,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터질 문제도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물-에너지, 의료, 방송 등 각종 공공 부문 민영화, 고유가 극복 미명하에 진행될 핵발전 드라이브 정책과 왜곡된 에너지 정책, 한반도 대운하를 필두로 시작될 각 지역별 개발사업 등 아직 본격적으로 터지지 않았을 뿐 준비하고 있는 사안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들 문제는 아마도 이명박 정부 초기에 집중적으로 추진되면서 향후 1`~2년 정도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이명박 정부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 민영화의 경우 노무현 정권 당시부터 세계적인 물기업 육성을 목표로 수자원공사 육성, 지역별로 진행되고 있는 상수도 관리를 민간 위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추진 중이던 사안이다. 에너지부문 민영화도 마찬가지이다. IMF 경제위기 직후인 김대중 정권부터 한전을 발전-송전-배전 등 전력 공급 기준으로 분할하고 이를 각각 민영화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 추진하다가 난관에 부딪혀 중단되어 있는 상황이다. 환경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증설, 핵폐기장 부지선정과정은 정부의 뜻대로 일방적인 진행이 계속 되고 있다. 거기에 한술 더해 이제는 국내 건설 물량이 부족하자, 국외로 눈을 돌려 끊임없이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기술개발과 이에 따른 연구투자비 확대 주장에도 아랑곳 않고 매년 수 천 억원의 비용을 핵발전 관련 기술 연구에 쏟아 붇고 있다.
이전 정권보다 추진속도가 빨라지고 체감하는 강도가 높아진 점들을 제외한다면, 큰 틀에서 이명박 정권과 다른 정권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리고 이들 정권의 공통점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본성을 보여주는 이명박 정권
미국에 살다 온 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자본주의의 본성을 잘 느낄 수 있는 나라”다. 최근 유행하는 영화 <식코sicko>에서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돈이 없는 이는 언제나 배제되며,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취약하다. 이는 부도덕한 자본가의 품성 때문도 아니며, 무능한 정치인의 역량 때문도 아니며, 관료주의에 빠져있는 공무원들의 무능 때문은 더욱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비인간적인 삶,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양심적인 자본가와 유능한 정치인, 열성적인 공무원이 있다면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폭력성, 비인간성은 조금 누그러들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겠지’라는 최소한의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지엽적인 요소들이 문제를 완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명박 정권이 한국사회에 기여한 것은 매우 크다. 그동안 많은 것들에 가려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결탁해 왔는지를 보여주었고, 미국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을 벌이는지 보여주었다. 또한 거대 자본이 공공부문을 민영화하여 더 많은 이익을 거두려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각각의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실을 하나로 묶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발의한 농림부장관 해임건의안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보수정치권에게 대안을 만들라고 하기엔 그들의 무능은 너무나 크다. 이제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진보정치와 함께 대안을 만드는 일. 이것이 바로 촛불을 드는 열정, 그 다음에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등록일: 08-07-04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