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들의 수명연장 과정만큼은 과거에 진행하지 못한 민주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은 민주적 절차보다는 불투명한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지난해 12월말 고리 핵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 문제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측과 고리 1호기 인근 지역주민들 간의 보상 협상이 타결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1월 17일 고리 핵발전소 1호기는 화려한 재가동식을 거쳐 다시 10년을 더 가동하게 되었다. 그동안 발전사업자인 한수원, 인근 지역주민들, 그리고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둘러싼 안전성, 주민수용성, 경제성 등의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논란에 대한 결론보다는 인근지역주민들과의 협상을 중시해 온 한수원이 결국 30여 개에 달하는 지역주민 요구사항 가운데 14개 사항을 충족시키는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수용된 14개 요구사항의 상세 내용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사실상 밀실협상을 통해 핵발전소 재가동문제를 넘겼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발전사업자 이익 따라가는 정부 그동안 환경단체들은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의 안전성과 이를 검증하기 위한 정보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수명연장을 위해 한수원이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에 제출한 주요기기 안전성평가보고서, 방사성 환경영향평가보고서, 주기적 안전성평가보고서 등 안전성 문제에 대한 핵심적인 자료의 공개는 안전성과 투명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자료다. 그러나 과기부는 안전성 심사가 진행되는 기간은 물론이고 수명연장이 결정된 이후에도 “(한수원 측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들 자료에 대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기존 핵발전소나 신규발전소 건설과정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다. 심지어 방사성 환경영향평가보고서의 경우에는 공청회를 진행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과기부의 공개거부는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부가 국민의 알권리보다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는 수명연장과 관련한 절차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신규발전소 건설과정에서는 각종 공청회, 설명회, 정보공개가 의무사항으로 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각종 민원사항이나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2005년 원자력법 개정을 통해 만들어진 조항에는 이러한 이해당사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안전성 문제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수명연장 자체를 논란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은 발전사업자의 이익을 그대로 반영한 법 개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고의 위험성과 파급력으로 인해 항상 논란을 몰고 다니는 핵발전소 문제의 특성상 다각적인 검토와 국민적 동의는 필수사항이다. 그러나 정부는 앞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안전성을 검증했으니 믿으라.”는 일방적인 발표만 하고 사실은 발전사업자의 이익을 챙겨주는 양면적인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믿으라’는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밀실 보상협상으로 수명연장 종결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문제를 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의 태도다. 한수원은 과기부의 안전성 검토 결과 발표가 있은 직후부터 고리 1호기 인근지역주민들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의 진행과정은 물론 타결된 14개 요구사항에 대한 상세내용조차 밝혀지지 않는 채 지역주민들과의 밀실협상을 통해 한수원은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문제를 간단히 마무리 지었다고 발표했다. 이미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 주민투표에서 3천억 원+알파라는 지역지원금으로 지역주민들의 민심을 돈으로 산 경험이 있다. 때문에 골치 아픈 안전성 문제나 정보공개문제로 문제를 확대시키기 보다는 몇몇 지역주민들과의 협상으로 문제를 손쉽게(?) 풀어버린 것이다. 발전소 가동으로 인해 물질적, 심리적 피해를 받아온 지역주민들에 대한 보상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보상의 내용과 절차는 매우 투명해야 한다. 보상 내용이 안전성 등의 주요 논란내용과 거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논란 등을 뒤로 한 채 보상내용조차 불투명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번 지역주민들과의 협상 타결을 “지역주민들과의 화합의 장을 열었다.”고 자평하는 현실은 지역 내 갈등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풀어본 적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고리 1호기 수명연장과 재가동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끝났다고 해서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벌써 20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 수명연장은 계속 제기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2년 월성 1호기 수명연장, 2017년 고리 1호기 2차 수명연장, 2023년 고리 2호기 수명연장 등 앞으로 수명연장을 기다리고 있는 핵발전소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이 좋은 선례로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수명연장 결정 절차를 밟았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핵발전소는 건설 부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논란과 반대, 그리고 지역민들의 민원이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고리 1호기 등 군사독재정권시절에 만들어진 핵발전소들은 이러한 논란조차 없이 정부의 일방적인 건설계획추진으로 건설됐다. 때문에 핵발전소들의 수명연장 과정만큼은 과거에 진행하지 못한 민주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은 민주적 절차보다는 불투명한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고리 1호기에 이어 앞으로 4년 밖에 남지 않은 월성 1호기에 대한 수명연장 문제부터라도 앞서 언급한 법제도상의 문제를 보완해 지역주민들의 기본적인 알권리와 선택권리, 그리고 안전성 및 경제성에 대한 치밀한 검토, 더 나아가서는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리 1호기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야 정부의 계획대로 고리 1호기 수명이 10년 연장되었고, 또 앞으로의 계획대로 또 다시 10년이 연장된다 할지라도 거대한 기계 덩어리인 고리 1호기가 영구히 가동될 수는 없다. 모든 기계는 수명을 다하면 폐기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우리는 기존에 사용하던 핵발전소를 “어떻게 재가동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폐쇄시켜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의 상태는 상업용 핵발전소 폐쇄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기술적, 공학적 검토는 물론이고 핵발전소에 의해 종속되어 버린 지역경제와 지역주민들이 어떻게 핵발전소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몇 가지 협상안을 갖고 다가오는 발전사업자들의 얕은 술책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또 다시 문제가 부각되면 몇몇 이들이 “밀실협상”을 통해 문제를 덮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언제까지나 이러한 방법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좋지 않은 선례로 끝나버린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문제를 다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법제도에 대한 개선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에 이은 또 하나의 비극인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이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헌석 ecenter@eco-center.org 청년환경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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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1호기 수명연장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의 협상을 통해 고리1호기는 재가동에 들어갔다. 2007년 7월 고리 핵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 반대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기자회견 사진제공 환경운동연합
고리 1호기 핵발전소.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안전성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군사독재정권시절 일방적으로 건설됐던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이 또 다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결정됐다. 2007년 6월 주민들이 진행한 고리 핵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 반대 퍼포먼스 사진제공 청년환경센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