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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없는 기수 - 선우 휘 중에서

"내 우리 시골 아저씨 애길 하지. 어느 날 시집을 보낸 딸 생각이 나서 괴나리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났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젊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대뜸 아저씬 우익이오 좌익이오 하고 묻더란 거야. 조금 생각한 끝에 먼저 우익이냐고 물었으니 그렇게 대답하는 게 무난하리라 믿구 우익이요라고 대답을 했대. 그랬더니, 이 영감쟁이가 낡아빠져 가지구 하면서 뭉둥이로 엉덩이를 한 대 쳐보내더란 거지. 엉덩이를 슬면서 다음 마을에 들었는데 또 젊은이들이 우르르 영감님을 둘러싸고는 또 우익이오 좌익이오 하고 묻더란 거야. 아깐 우익이라고 해서 맞았으니 그래 이번엔 좌익이오 했다는 거지. 그랬더니 이 영감쟁이가 늙어빠지구두 좌익이야 하면서 또 한 대 엉덩이를 휘갈기더란 거야. 두 번 봉변을 겪은 뒤 딸의 집을 찾은 영감님은 암탉 한 마릴 얻어먹구 돌아오는데 또 한군데서 젊은이들이 우르르 우익이냐 좌익이냐고 하기에 이번에는 되물었다는 거지. 우익이라구 해야 안 맞소, 좌익이라고 해야 안 맞소?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이건 기회주의자라구 또 한 대 안기더란 거야. 세 번을 맞으니 영감님이 화가 났겠지. 고개턱에서 또 젊은이들이 둘러싸고 묻자 영감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대. '난 우익도 좌익도 기회주의자도 아니오. 난 죄가 없소'라고 말이지. "

선우휘(1959.12), 깃발없는 기수